박성민(가명·35)씨. 경기도 평택에서 자라 전문대 중퇴 후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곧장 운송회사에 입사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63)가 2.5t 용달차를 몰아 식구들 먹여 살리고 아파트도 한 채 마련하는 것을 보고 '대학 안 나와도 먹고살겠다'고 자신했다.

그 믿음에 금이 간 것은 작년 3월이었다. 12년 근속한 운송회사에서 구조조정 당했고, 9개월 만에 취직한 급식 납품업체에서도 넉 달 만에 실직했다. 1년 새 두 번 실직한 것이다.

그는 주 1~2회 이삿짐 아르바이트로 버텼다. 일당 7만원을 쥐고 파김치가 돼 귀가하면 초등학교 2학년부터 세 살배기까지 딸 셋이 박씨 다리에 매달려왔다. 제지공장과 택배회사를 돌며 숱하게 면접을 본 끝에 지난 5월 간신히 동네 마트 배달사원이 됐지만 가게 형편이 나빠지면 언제라도 실직할 수 있는 임시직이다. 박씨는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지만 전망이 안 보이는 게 더 괴롭다"고 했다.

한국 사회를 떠받쳐온 '상승의 사다리'가 작동을 멈추고 있다. '하면 된다'는 계층 상승의 메커니즘에 균열이 생기고, '노력해도 가난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확산되고 있다.

취재팀이 지난 석 달간 각 부문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꾸려 한국노동패널조사 10년치(1998~2007년)와 통계청 도시가계조사 20년치(1989~2009년)를 정밀 분석한 결과, 지난 20년 사이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멈춰 서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로 변화했음이 수치로 확인됐다.

외환위기 전(1989~1995년)까지 우리 사회에선 중산층이 꾸준하게 늘어났다(1989년 72.5%→1995년 75.0%). 외환위기를 전후(1996~2001년)해 중산층이 5년 만에 4.5%포인트 줄어들고 빈곤층과 상위층으로 양극화됐다.

외환위기 후폭풍이 가라앉은 뒤(2002~2009년) 이런 급격한 변화는 사라졌지만 중산층은 야금야금 줄어들고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두꺼워지고 있다(중산층 2002년 69.4%→2009년 68.1%, 빈곤층 2002년 9.3%→11.3%).

외환위기 직후 중·상위층이던 가구 다섯 집 중 한 집(18.8%)이 10년 사이 빈곤층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도 처음 수치로 확인됐다. '아차' 하는 순간 아래로 추락하는 경험이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직후 빈곤층이던 가구는 다섯 집 중 세 집(55.7%)이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빈곤층에 머물러 있었다. 분석을 총괄한 노대명 사회통합위원회 전문위원은 "나머지도 대부분 아슬아슬하게 빈곤선을 넘어선 정도에 불과해 언제든 다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같은 분석은 신분상승 가능성이 폭넓게 열려 있던 우리 사회가 이젠 '계층 고착' 상태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부 잘하거나(교육), 좋은 회사에 취직하거나(고용), 사업이 성공하거나(창업), 내 집을 마련하는(주택) 등의 각종 경로를 통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찬욱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우리 사회에 폭넓게 퍼져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복지제도를 도입하거나 정비했다. 그러나 복지 시스템은 극빈층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대주는 데만 집중해,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빈곤층이 능력을 키워 가난에서 탈출하도록 받쳐주지는 못하고 있다. 노대명 위원은 "지금의 복지 시스템은 깁스를 한 사람에게만 목발을 주고, 깁스를 풀면 재활치료도 없이 당장 목발부터 빼앗아 그 사람이 다시 주저앉거나 아니면 아예 깁스를 풀 엄두를 못 내게 하는 식"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복지 만능주의'가 해답은 아니라고 본지 자문단은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복지 혜택 확대에 나섰지만 사다리는 복원되지 않고 정부 빚만 거대하게 늘어나 더 이상 지탱이 힘든 한계점 근방까지 왔다. 우리 사회에 '상승의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복지 안전망'으로 계층 하락을 막는 동시에, '성장 뜀틀'로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는 양 갈래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자문단은 제언했다.

[▷ '[특집] 사다리가 사라지는 사회'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