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철 대문이 왈칵 열렸다. 2일 오전 8시. 서울 영등포 주택가 2층 살림집(66㎡·20평)에서 여고생 3명과 초등학생 막내가 우르르 뛰어나왔다. 박공순(가명·71) 할머니가 혼이 쏙 빠진 얼굴로 집안을 치웠다.

"전쟁이여, 전쟁. 말(馬)만한 손녀딸들이 한꺼번에 머리 감겠다고 아우성쳐서 아침마다 수챗구멍이 꽉 막혀요."

박 할머니는 해물탕집 주방장을 해서 5남매를 고등학교까지 가르쳤다. 그만큼 배웠으면 무학(無學)인 자신보다 낫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전후해 가족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가게를 하던 자식들이 차례차례 주저앉은 것이다.

큰딸(46)이 가출한 뒤 두 아이를 할머니가 떠맡았다. 이어 둘째딸(44·식당 종업원)이 식당 하다 망해 남매를 데리고 친정에 돌아왔다. 할머니가 노총각 장남(47·백화점 청소원)과 단둘이 살던 방 두 칸짜리 전셋집에 어른 셋, 아이 넷이 북적거리게 됐다. 장남은 집 대신 찜질방에서 잘 때가 많다.

다섯집 중 세 집이 추락 경험

박 할머니처럼 외환위기를 전후해 가난에 빠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본지가 사회통합위원회와 함께 '한국노동패널조사' 10년치(1998~2007년)를 정밀 분석한 결과 도시 가구 다섯 집 중 세 곳(57%)이 10년 사이 한 번 이상 빈곤층에 추락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 집 중 한 곳(23.7%)은 5년 이상 빈곤에 허덕였다.〈그래픽〉 노동패널은 정부가 매년 전국 도시지역 5000가구의 살림살이를 추적한 자료다.

분석을 총괄한 노대명 사통위 전문위원은 "아직은 중산층이지만 빈곤선 언저리를 맴돌고 있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겨우 살 만해졌다 싶으면 도로 주저앉는 현상을 전문가들은 '반복 빈곤'이라고 부른다. 반복 빈곤은 말 그대로 파도처럼 반복해서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 빈곤층)를 덮친다.

이번 분석에서 5년 이상 가난에 허덕인 사람 중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아 사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은 소수(19%)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다수는 일할 능력이 있고 실제로 일하고 있는 워킹푸어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워킹푸어 숫자가 300만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현숙(가명·61)씨도 그중 하나였다.

'또순이' 이씨의 좌절

이씨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다 중소기업 경리사원인 남편과 만났다. 결혼 6년 만에 서울 강북에 단독주택을 마련해 '또순이' 소리를 들었지만 외환위기는 이씨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망한 뒤 남편이 회사 빚을 보증선 것 때문에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갔다.

남편은 신용불량자, 이씨는 기초생활 수급자가 됐다. 이씨는 전화 상담원으로 취직했다. 교육만이 살 길이라 생각해 임대아파트에서 월세방으로 옮기고 남는 보증금으로 남매 학원비를 댔다.

아등바등 애쓴 끝에 큰딸(28)이 공기업에 취직해 월 150만원씩 받아왔다. 아들(25)도 명문대에 진학해 각종 아르바이트로 월 100만원씩 벌었다. 온 가족 수입을 모아 7000만원에 전셋집을 마련하고 기초수급에서도 벗어났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씨는 정년 규정에 걸려 지난달 상담원을 그만뒀다. 남편은 아파서 일을 못하고 아들은 군대에 있다. 다시 기초수급자가 되려고 주민센터에 찾아갔지만 '돈 버는 딸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딸은 시집가서 친정까지 부양할 능력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씨는 "당장 먹고 살 걱정에 미칠 것 같다"며 "악착같이 가난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오종인씨는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직원 8명을 데리고 공장을 운영했지만 외환위기 직후 망해 부인과도 헤어지고 지금은 빈곤층 바로 위인 차상위 계층 신세다. 등교 거부 아들(고1)을 돌보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는 오씨는“보육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져도 나같은 사람이 빈곤층으로 몰락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정체 상태의 빈곤 탈출률

1990년대 전반(1989~1995년)까지는 고속 성장이 모두를 끌어올렸다. '몇 칸 올라가느냐'가 차이 날 뿐 대다수의 경제적 지위가 상승했다. 박 할머니는 젊은 시절 전기 안 들어오는 초가집에 살다 중년 이후 온수가 나오는 주택에 살게 됐다. 자신은 무학이지만 자식들은 고등학교까지 가르쳤다. 이씨도 맨손으로 출발해 30대 중반에 자기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2010년 대한민국은 '하강이 많은 사회'다. 자문단 분석결과 도시 가구 중 중산층 이상으로 살다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가정(빈곤 진입률)은 외환위기 직후 정점(1999년 10.4%)을 찍은 뒤 2003년 8.1%, 2005년 6.1%로 점차 줄어들다가 2007년 다시 7.1%로 늘어났다.

반면 빈곤에서 벗어나는 가정(빈곤 탈출률)은 2001년 정점(7.8%)을 찍은 뒤 6%대 후반에 정체되어 있다(2003년6.6%→2005년 6.7%→2007년 6.8%). 그 결과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계속 가난에 시달리는 가정(빈곤 잔존율)은 1999년 14.3%에서 2007년 20.3%로 급증했다.

요컨대 ①불황이 올 때마다 허약한 중산층이 우르르 사다리 맨 밑칸으로 떨어지고→②맨 밑칸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줄어들어→③사다리 맨 밑칸이 갈수록 붐비는 악순환 구조가 생긴 것이다. 2009년에는 아직 통계 뒷받침이 되지 못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 같은 현상이 더 뚜렷해졌을 것으로 자문단들은 보았다.



"여유 생기면 바로 돈 쓸 일 터진다"

요양보호사 김덕자(가명·52)씨는 "올라가긴 어렵고 떨어지긴 쉽다"고 했다. 김씨의 남편(54)은 도시가스 설비업체를 차렸다가 외환위기 때 망했다. 부부가 악착같이 맞벌이해 빚 1억5000만원은 갚았지만 한푼 모으질 못했다.

김씨는 "젊었을 때는 이 나이쯤 되면 부자는 못돼도 허덕이진 않을 줄 알았다"고 했다. 남편의 일용직 벌이(월 150만~200만원)에 김씨 벌이(월 80만~90만원)를 합쳐도 다섯 식구 식비·공과금·교통비·병원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저축한 게 언제인지 기억에 없다"고 했다. 대학생 아들(24)과 큰딸(23)은 휴학 중이다.

김씨는 "애써 여유를 만들면 바로 돈 쓸 일이 생긴다"며 "우리 같은 가정은 일이 줄거나 병이 들면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고 했다.


'사다리가 사라진다' 자문단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책학)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제학)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
노대명 사회통합위원회 전문위원(정치사회학)
박명수 고용정보원 연구개발본부장(노동경제학)
박신영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시행정학)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회학)
서병수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장(사회복지학)
석상훈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경제학)
이민규 중앙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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