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속으로] 앞엔 北초병, 뒤엔 南초병… 주민들, 양측 사이서 농사 지어

  • 〈DMZ 특별취재팀〉
  • 유용원

    입력 : 2010.06.25 03:05 | 수정 : 2010.06.25 10:21

    [본지, 언론 사상 첫 내부 취재] [1부] 긴장 흐르는 현실
    [8] DMZ 내 유일한 마을 '대성동'을 가다
    논밭에 나갈 시간 2~3일 전 군에 보고하고 매일 저녁 집집마다 군인들이 돌며 점호
    중고생·부모는 외지로… 유일한 초등학교엔 "미군이 영어 가르친다" 외지서도 전학 희망
    분계선 넘어 北기정마을, 옛날엔 왕래 잦던 이웃

    '입촌은 매시 30분, 퇴촌은 매시 20분. 20분 어간에 오실 시 1시간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 대성동 자유의 마을 입구, 컨테이너로 된 '민원실' 문에 붙은 글귀가 손님을 맞았다. 마을에 들어갈 때도 나갈 때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군(軍)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단층 주택들이 줄 맞춰 늘어선 이곳은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단 하나의 마을이다. 대성동마을을 찾은 지난해 12월 23일은 마을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50여가구 200여명이 사는 것으로 돼 있지만 주민 20여명이 회관에 모였을 뿐 동네는 한산했다. 안내 장교는 "1년에 최소 8개월만 마을에서 잠을 자면 주민 자격이 유지되기 때문에 농한기인 겨울에는 주로 외지에서 생활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며 "평소에도 중·고교 학생들과 엄마들은 사유서를 내고 파주·문산 시내 등에 거주해 실제 대성동엔 100명 안팎의 주민들만 머문다"고 했다.

    주민들이 사는 법

    북을 향해 서 있는 마을 팔각정에 올랐다. 대성동마을과 북한의 DMZ 내 선전마을 기정동 사이에 낮은 제방이 길게 누웠고 대성동 주민들이 농사 짓는 논이 제방까지 닿아 있는데, 제방 위로 불쑥 솟은 북한군 경계소초(GP)가 보였다. 제방 바로 너머가 군사분계선(MDL)이고 거기서부터 곧바로 기정동마을이 시작된다.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200m가 채 안 되는 거리의 북한군 GP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농사를 짓는 셈이다.

    취재헬기에서 내려다본 남측 대성동마을과 북측 기정동마 을 전경. 왼쪽 아래 태극기가 펄럭이는 지역이 대성동, 인공기 아래 파란 지붕을 덮은 흰색 건물이 모여 있는 지 역이 기정동마을이다. 그 뒤로 북한 개성시가 보인다. (Canon 1D Mark Ⅳ EF70~200㎜ 1/500 F8 ISO200 촬영) /DMZ 특별취재팀

    주민들이 논에 나올 때마다 우리 군인들이 경호를 하지만, 군인이 MDL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북을 자극할 수 있다. 그래서 경호병은 논의 반대쪽 끄트머리에 서고 주민들만 MDL 코앞의 제방까지 가 모내기를 하고 농사일을 돌본다. 이곳뿐 아니라 대성동 곳곳의 논밭에선 주민들이 일을 하고 총을 든 군인들이 뒤에서 엄호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군인들을 실은 트럭이 농부의 트랙터를 따라다니고, 외부에서 방문한 전기기술자를 병사 한 명이 졸졸 쫓아다니기도 했다.

    대성동마을은 중무장한 1개 중대가 24시간 지킨다. 주민들은 논밭에 나갈 시간을 2~3일 전 미리 정해 군에 보고해야 하고, 매일 오후 7~8시 집집마다 찾아온 군인들에게서 점호를 받는다.

    납세·병역 의무는 면제되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 등엔 제약이 있고, 유엔사령부 허가만 받으면 경작지를 넓힐 수는 있어도 땅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농가소득은 연 7000만~8000만원 정도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외부 인원 출입이 어려워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 안에 중·고교가 없어 학생과 학부모들은 주로 외지에 나가 있지만, 이 마을 유일한 학교인 대성동초등학교는 사정이 정반대다. 전교생 30명 정원에 입학 희망자가 몰려 추첨으로 선발하고 문산·파주·일산 등지에서 전학 오기를 기다리는 학생도 늘 10여명씩 된다. 4년 전부터 인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소속 미군들이 주 2~3일 학교를 방문해 영어를 직접 가르치면서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이날 찾아간 대성동초등학교는 북쪽을 향한 창문이 회색 시멘트 방호벽으로 모두 막혀있고 남쪽으로만 큰 창이 여러 개 나있어 DMZ 안의 학교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학생·교사 모두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운동회 날에도 JSA경비대대가 학교 주변에 병사들을 배치하고 경호작전을 벌인다.

    학교 관계자는 "스쿨버스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고 등굣길에만 검문을 세 번씩 거쳐야 하는데도 아이와 학부모들이 학교를 매우 좋아한다"며 "아이들이 DMZ 안에 있다는 것에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북한 동포와 통일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남북관계 나빠지면 생활에 지장

    대성동마을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체결할 당시 '남북 비무장지대에 각각 1곳씩 마을을 둔다'는 규정에 따라 그해 8월 3일 북한 기정동마을과 함께 조성됐다. 휴전 당시 마을(행정구역상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에 주소지를 둔 사람의 직계만 거주할 수 있었다. 시집 온 며느리는 주민이 될 수 있지만 결혼한 딸은 떠나야 하는 등 거주권 심사가 까다로워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 수는 큰 변화가 없다.

    원래 대성동과 기정동은 서로 '건넛마을'이었다. 김동현 전 이장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소달구지 끌고 기정동에 이엉 팔러 다니시고, 걸어서 누구네 환갑잔치에 다녀오셨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전쟁 전까지 남한의 대성동마을은 북한 개성 생활권, 북한의 기정동마을은 남한 의정부 생활권이었다. 주민 김태유씨는 "옛 대성동 주민들은 물건을 사고팔 일이 있을 때마다 1번국도를 따라 걸어서 반나절 거리(11.5㎞)인 개성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60년간 마을의 역사는 남북관계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 이곳 주민들은 남북관계의 미묘한 파장까지 몸으로 직접 느끼며 살아왔다. 1970년대 초엔 농사일을 돕던 일꾼 한 명이 북한군에 납치됐고 1997년엔 마을 야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주민이 납치됐다가 닷새 만에 송환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2년엔 마을에서 훈련 중이던 JSA대대 소속 미군병사가 오발사고를 내 마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2004년 대북·대남 심리전이 중단되면서 소음에 시달리던 마을이 고요해졌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땐 주민들이 마을회관 2층 망원경 앞에 모여들어 개성으로 향하는 방북단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대성동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이면 인근 파주지역 민통선 마을인 해마루촌·통일촌 주민들과 함께 윷놀이대회, 노래자랑을 연다고 한다. "'기정동 주민 초청 윷놀이대회, 노래자랑'이 열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인터넷(dmz.chosun.com)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아! 6·25’,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 ‘Inside the DMZ 사진영상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DMZ 특별취재팀〉

    사진·영상
    이기원 부장, 최순호·정경열·주완중·채승우 차장대우, 이재호·민봉기 기자(이상 사진부)

    취재
    유용원 군사전문기자(정치부), 박영석 차장대우(사회부), 최수현 기자(사회정책부)

    영상 총감독
    박종우 객원기자

    대표 이메일 dmz@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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