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전쟁 나면 남조선 20만 봉기" 박헌영, 뭘 믿고 장담했을까

    입력 : 2010.06.24 03:03 | 수정 : 2010.06.24 12:12

    北서 입지 위해 勢 과대포장
    北공작원들 南서 외면 당해

    박헌영<사진>이 6·25 전쟁 직전 공언했던 '남로당원 20만 봉기'설의 진실은 무엇인가. 6·25 전쟁 내내 남한에서 남로당의 이렇다할 '봉기'는 없었다. 그런데 박헌영은 무엇을 믿고 봉기를 공언했을까.

    박헌영이 6·25 전쟁 직전, 남로당 정치공작원을 남한에 내려보내 봉기를 일으키려 한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로당원 출신으로 전향한 뒤 '남로당 연구'를 낸 고(故) 김남식씨는 "박헌영·이승엽이 월북한 뒤 북한에 심복들을 불러들였고, 1950년 6월 초순 이들을 남한의 각 도에 파견했다"고 썼다. 서울·충남·전남·전북 등에 5~10명씩, 주로 해상을 이용해 침투한 이들의 목적은 '당 조직을 수습하여 인민군 남침 때 군중을 호응·궐기시키며 인민군 강점 지역에서 당 복구를 위한 것'이었다. 서울에는 6월 10일 이승엽의 지령에 의해 이중업과 안영달이 파견됐고, 충남에는 남로당 중앙간부 출신인 이주상과 충남도당 위원장을 지낸 여운철 등 5~6명이 서해안으로 상륙, 대전에 잠복했다.

    이들 가운데 전남 영광 지역에 침투한 정치공작원의 최후는 몇 년 전 이 지역의 6·25전쟁 체험을 현장조사한 윤정란 전 국가보훈처 연구관에 의해 알려졌다. 윤 박사에 따르면, 6·25전쟁 발발 사흘 전인 22일 밤 무장 정치공작원 32명이 발동선을 타고 전남 영광 해안에 상륙했다. 주민들은 이들을 보자마자 경찰지서에 신고했고, 군경 합동작전으로 전원이 몰살당했다. 이들은 봉기의 배후로 생각했던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북한은 6·25전쟁 직전 무장게릴라도 침투시켰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한국 1950: 전쟁과 평화'에 따르면 제주 4·3 사건을 이끌다 월북한 김달삼과 남도부의 게릴라 부대 등이 1950년 6월 초 강원도를 통해 남하했다. 기관총을 갖고 있어 '기관총 부대'라고도 불린 이들의 침투 목적은 역시 인민군이 공격할때 호응해 남한의 치안조직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1949년 말이 되면 4·3 사건과 여순 반란에 뒤이은 빨치산들의 유격전을 거의 진압하고, 전향한 좌익들은 '보도연맹'으로 묶어냈다. 무엇보다 박헌영이 내려보낸 정치공작원과 무장게릴라들이 더 이상 남한에서 발붙일 여지가 없을 만큼 남한의 민심이 돌아서버렸다.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20만 남로당원 봉기설은 박헌영이 조선노동당에서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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