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례(週例) 보고를 한 뒤 배석자 없이 대통령을 따로 만나 '청와대 인적(人的) 쇄신'을 제안하려 했으나 독대(獨對) 기회를 얻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도됐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10일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당사자인 정 총리는 "신문을 보지 않아 모르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청와대 주례회동은 그 일정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러나 이날은 주례회동이 시작된 오전 11시 무렵부터 여권(與圈) 곳곳에서 "지금쯤 총리가 대통령과 독대해 지방선거 패배 이후의 상황을 빨리 수습하려면 청와대를 인적 쇄신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의를 했을 것"이라는 '거사설(擧事說)'이 나돌았다. 여러 사정으로 미뤄볼 때 정 총리가 이날 대통령에게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이야기하려 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 후 정 총리 주변에선 정 총리가 자신을 보좌하는 정무실장을 임명하는 데만 넉 달 넘게 걸렸고, 대통령과 정권 실세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국무차장(차관급)의 교체를 몇 차례나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 따라 흘러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 총리는 지난 8개월 동안 총리 구실을 못해 왔다는 말이다.
국민은 정 총리가 대통령에게 세종시나 4대강 사업 등에서 그간 어떤 직언(直言)을 해 왔는지 들은 바가 없다. 정 총리는 총리 지명 후 첫 기자회견에서 '세종시 수정'을 들고 나온 이후 세종시 수정에 앞장서 왔다. 충청권 출신인 정 총리가 발탁된 데는 이런 구실에 대한 정권의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여러 원인 가운데는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이 앞 순위(順位)에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패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총리 주변은 정 총리가 대통령에게 민심을 알리고 국정 쇄신을 건의해 이 정권을 위기에서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번 일을 보며 과거 몇몇 총리가 대통령과 반(半)공개적으로 충돌한 뒤 물러나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활로(活路)를 찾았던 전례(前例)를 떠올리고 있다. 총리는 들어설 때도 총리다워야 하고 물러설 때도 총리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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