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양복 입고 미군 수송기로…

    입력 : 2010.06.10 03:05

    이젠 추억이 된 '월드컵 첫 출전 1954년 한국팀'
    짐은 옷가방 하나 달랑 스위스 하루전 겨우 도착
    급히 주문한 경기복엔 등번호 빠져 급조 부착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시작된 한국의 월드컵 첫 도전은 한국전쟁의 상처만큼 참담했다. 한국의 '1호 월드컵 대표팀'은 헝가리와의 첫 경기에서 0대9로 패했다. 이는 한국의 역대 월드컵 최다 점수 차 패배기록으로 남아 있다. 터키와의 2차전은 0대7로 무릎을 꿇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국민이 끼니 걱정을 하던 시절, 어쩌면 '2패 16실점 예선 탈락'이라는 한국의 첫 성적표는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푸른 유니폼, 갈색 축구화, 낡은 가죽가방은 모두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의 1호 월드컵 대표팀과 함께했던 물건들이다. 바람이 빠진 갈색 공은 1950년대 널리 사용됐던 축구공이다. 사진은 이재형씨의 수집품들을 모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찍은 것이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군용기 타고 스위스로

    한국 1호 대표팀은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을 1승1무(5대1, 1대1)로 꺾고 월드컵 출전권을 차지했다. 숙적을 이기고 지역예선은 통과했지만, 그때 대표팀에 요즘 같은 풍족한 지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선수들은 멀리 스위스까지 가면서도 각자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 개인용 갈색 가죽 가방에 담아 갔다. 돈이 없어 한 양복점에서 '외상 양복'을 단체로 맞춰 단복으로 입었다. 당시 선수들을 이끌었던 고(故) 김용식 감독의 친필메모를 보면 전술적인 부분보다는 '급동작(순발력)과 주력이 강해야 함' '명철한 두뇌를 가져야 함' 등 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이 적혀 있다.

    당시 대표팀은 미군 수송기를 빌려 타고 꼬박 48시간을 날았다.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 시간은 경기가 시작되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제1호’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 헝가리와의 경기에 앞서 가슴에 손을 얹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재형씨 제공

    등 번호도 없이 경기장으로

    어려운 나라 사정은 그라운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차전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선 대표 선수들은 월드컵 관계자들로부터 "등번호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월드컵을 며칠 앞두고 급하게 주문한 선수복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결과였다. 선수복 제작업소가 등번호를 깜박하고 달지 않은 사실을 경기장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대회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천으로 된 숫자들을 구해 핀으로 등에 고정한 뒤에야 한국은 헝가리전을 뛸 수 있었다.

    고 강창기 선수의 스위스월드컵 ID 카드(사진 위쪽)와, 한국의 1호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고 김용식 감독의 친필 메모(사진 아래쪽). /이재형씨 제공

    선수들의 몸도 정상적인 경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몇 분 뛰지도 못하고 다리에 쥐가 나 주저앉았다"(고 최정민 선수) "워낙 실력 차가 커서 공을 몰고 앞으로 나갈 여지조차 없었다"(고 김지성 선수)는 것이 선수들의 얘기였다고 원로 언론인 이의재(75)씨는 전했다. 초라한 행색의 한국팀을 보고 옷가지와 식료품 등 구호품을 전달하는 외국인도 있었고, "전쟁 중인 나라가 어떻게 월드컵에 출전했느냐"고 묻는 외국 기자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월드컵 도전사의 첫 페이지를 쓴 주인공 중 생존한 선수는 수비수였던 박재승(87)씨뿐이다. 하지만 박씨도 현재 노환으로 고생 중이다. '1호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이 남아공 월드컵의 한국선수단을 보면 어떤 감회가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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