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임기 2년반(半)짜리 '여소야대' 대통령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0.06.06 22:44

    李 대통령, 새로 선출됐다 생각하고
    정체성 확립과 안보 불안 해소에 올인하는 자세를

    김대중 고문

    6·2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가 확인된 날,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한 첫 발언은 '경제회복과 지속성장'이었다. 참으로 맥빠진 반응이다. 민심이 소통 부재(不在)의 MB정치와 토목사업투성이인 MB정책에 NO를 선언했는데 MB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경제'만을 되뇌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성장과 지속성장을 추진할 동력(動力)에 제동이 걸렸는데 여전히 '경제'를 거론하고 있으니 화난 보수세력에는 대통령이 '남의 다리 긁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자기 처지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하고 열심히 했다고 해도 국민이 몰라주면 도리가 없다. 정치에서 '역사의 심판'은 의미가 없다. 훗날 역사에서 인정받는다 해도 지금 국민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정치는 나아갈 수 없다. 정치는 국민의 표(票)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의 심판' 운운하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다. MB는 하드웨어(hardware)에 자부하지만 국민은 소프트웨어(software)에 더 감동받는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두 국민을 위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것이고 그래서 선(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독선(獨善)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아마도 국민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엉뚱하게 '경제' 쪽으로 삐져나간 것 같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이번 선거에서 내건 기치는 한마디로 '반(反)MB'였다. 자기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으니 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MB의 것은 무조건 싫다, 안 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국민은 야권의 손을 들어줬다. 한마디로 'MB의 것'에 일단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면 그는 국민의 뜻을 읽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정치와 정책을 재고(再考)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치고 조정하겠다는 것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데 그치지 말고 '반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진로가 극히 애매하고 위태로운 시기에 이 나라를 이끌 책무가 아직 남아 있다. 세종시, 4대강 같은 것보다 훨씬 중요한 과제들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 그것이 MB의 최대 과제다.

    국민은 지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의 70%가 북한을 우리를 위협하는 집단이라기보다 우리의 '협력과 지원의 대상'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이번 선거에서 결과적이지만 '이명박 패당을 박살 내자'는 북한 집단의 지령과 선전이 그대로 먹힌 꼴이 됐다. 김정일 집단의 선동도 무섭지만 이 정부를 전쟁광으로 몰고 가는 남한 내 친북·종북 세력의 기승이 더 두렵다. 우리나라는 지금 안보적 측면에서 중심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다. 많이 헷갈려 있고 서로 다른 소리를 해대고 있다. 안보불감증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고 한편으로는 전쟁위협에 쉽사리 이끌리는 측면도 있다.

    이 대통령은 이것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자신 때로 헷갈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천안함 폭침사태 때 초기에 그가 취한 뒷걸음질 자세, 후반에 보인 강한 모습, 그리고 최근 대북심리전 재개문제에서 보였듯이 다시 후퇴하는 행보 등은 그 자신 대북문제 안보문제에 너무 포퓰리즘적(的)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이 시국을 어떻게 보고 있고 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그가 단행할 정부와 한나라당의 인사(人事) 쇄신에 있다. 그 인사의 범위와 내용에 따라 그가 세종시·4대강·안보문제 등에 그저 중간적으로 어정쩡하게 갈 것인지, 자신이 처음에 보인 반응처럼 '나는 오로지 경제의 길로 가련다'는 식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중점을 둬야 할 것은 강조하는 선택의 길로 갈 것인지, 무엇보다 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안보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올인하는 자세로 임할 것인지를 우리는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느 길로 갈 것인지에 나라의 진로가 달려있다. 일 욕심이 많은 이 대통령은 어쩌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을 듯이 달려들겠지만 6·2선거의 결과는 그에게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 줬으면 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을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임기 2년 반(半)짜리 대통령에 새로 선출된 것으로 간주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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