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61] 희망봉

  •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입력 : 2010.06.04 23:29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희망봉'을 한자로 써보라고 시켜 본다. 많은 학생들이 '希望峯'이라고 쓰면, '喜望峯'이라고 써야 맞다, 그 이유는 이곳 지명이 영어식으로 표현해서 단순히 'Cape of Hope'가 아니라 'Cape of Good Hope'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줄 요량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수업 스킬도 소용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希望'이라는 한자를 아예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지명은 근대 초에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가기 위한 대양항해를 한 데에서 연유한다. 1488년에 포르투갈의 항해인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인도로 가는 항해를 시도하다가 이곳에 도착했다. 사실 그의 배는 의식하지도 못하는 새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에 들어섰다가 회항하여 돌아가는 중에 이곳에 들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의미를 띤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유럽의 지리학에서는 아프리카의 남쪽에 또 다른 거대한 대륙이 있고, 이것이 아프리카와 연결되어 있어서 바다를 통해 인도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설이 유력했다. 그런데 이제 인도까지 가는 바닷길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디아스는 이 지역 근해에서 거친 폭풍우를 만나 고생을 심하게 했기 때문에 '폭풍의 곶(Cabo das Tormentas)'이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1497년에 바스쿠 다 가마가 이곳을 통과하여 정말로 인도까지 항해하고 돌아오자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2세는 이곳 지명을 '喜望峯'으로 고쳤다. 유럽인들에게는 희망이었을지 모르지만 원래 이곳에 살던 코이산(Khoisan) 족 같은 현지인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아시아와 유럽 간 원거리 항해 중에 선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보급품을 충전하는 중간 정박지로서 좋은 여건을 가진 이 지역은 유럽인들의 식민지로 변모했다. 그 후 네덜란드인, 프랑스계 신교도들(위그노), 독일인, 영국인 등이 들어와 주변 지역으로 팽창해 가면서 전쟁과 약탈, 인종차별의 역사가 전개된 끝에 20세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만들어졌다.

    곧 월드컵이 이 나라에서 벌어진다. 우리 축구팀이 최선의 성과를 거두어서 이 지역이 새로운 의미의 희망봉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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