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 르포] 석유 판 돈 해외 퍼주는(쿠바 에콰도르에 71조원 제공) 새 중산층 국민은 해외로 탈출

    입력 : 2010.05.31 03:03

    [특파원 현장 르포] '차베스 포퓰리즘'에 신음하는 베네수엘라 [3·끝]
    정국 못견딘 '차베스 난민' 美·파나마로 이민 급증
    달러부족 벼랑 끝 정권 중국에 철저히 이용당해

    "세계 최고의 기부왕은 빌 게이츠워런 버핏이 아니라 차베스죠."

    지난 17일 베네수엘라의 빈민촌 페타레 야니토 지역. 산등성이의 40㎡ 남짓한 빈터에도 3~4층짜리 벽돌 집을 지어 놓았다. 건물들은 살짝 흔들기만 해도 무너질 것 같았다. 아이들은 꾀죄죄한 러닝셔츠만 걸친 채 물총을 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사업가 A씨는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이곳으로 안내했다. 그는 "얼마 전 한 현지 언론에서 우고 차베스 집권 이후 사실상 무상으로 쿠바에콰도르에 제공한 석유와 차관의 규모가 620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고 말했다.

    부자 순위 세계 1, 2위인 게이츠와 버핏이 기부해 세운 '빌 게이츠 재단'의 자산규모 600억 달러(기부 출연 종결 시점)보다 많다. A씨는 "자국민이 이렇게 사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변두리에 난립해 있는 빈민촌 풍경.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모두 620억달러를 해외‘혁명 원조’에 썼다. /카라카스=조의준 특파원 joyjune@chosun.com
    혁명을 한다며 해외에 620억 달러를 퍼줬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열변을 토했다.

    이곳은 처음에는 주거지구가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모여 있는 공장지대였다. A씨는 "차베스가 '땅 소유에 상관없이 빈터에 집을 지으면 살 수 있다'는 법을 만든 뒤 이렇게 빈민촌이 돼버렸다"고 했다. 집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고 범죄가 빈발하자 공장들은 결국 떠나야 했다.

    A씨는 "차베스가 국부를 해외에 퍼주는 사이, 돈을 벌어야 할 자국 공장은 문을 닫고 중산층은 달아나고 있다"며 "고유가로 반짝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 차베스는 경제와 복지 모두에서 실패했다"고 말했다.

    파나마로, 미국으로…'차베스 난민들'

    지난 19일 파나마. 해변을 따라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고층빌딩이 늘어서 있었다. 인구 약 130만명인 수도 파나마시티에 20층 이상 건물이 무려 100여 채나 올라가고 있었고, 150여 채는 이미 완공돼 있었다. 파나마는 지난 2006년부터 부동산 버블 붐의 경고를 꾸준히 받았지만 버블은 아직 터지지 않고 있다. 코트라(KOTRA)의 송동규 파나마센터장은 "차베스를 피해 탈출한 베네수엘라의 중상류층이 파나마 건설 버블 붕괴를 막아주는 한 축"이라고 말했다. 현지 신문인 '파나마 아메리카'는 지난 6년간 파나마에 입국한 뒤 출국하지 않은 사람의 수가 무려 8만70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04~2009년 파나마 사람과 결혼한 베네수엘라 사람은 3000명에 이른다. 길거리 곳곳에는 베네수엘라 신용카드도 받는다는 전단이 붙어 있었다.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톤 지역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웨스톤수엘라(Westonzuela)'란 신조어도 생겼다. 2000년 9만여 명이던 미국 내 베네수엘라 이민자 수는 2008년 2배(18만8000명)로 급증했다.

    "달러 있어야 마음 편해"

    기자가 지난해 11월 콜롬비아에서 만났던 베네수엘라인 B씨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요즘 내 고민은 미국에 있는 계좌의 달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이 돈이 떨어지면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간다"고 했다. 국경 밖에선 베네수엘라 화폐(볼리바르)를 환전해주는 곳이 거의 없어 국외로 가면 볼리바르는 휴지조각이 된다. B씨는 "달러가 있으면 내게 팔아라. 달러가 있어야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카라카스 시내의 한 전자제품 매장. 42인치 '파이오니어' PDP TV 1대에 9599볼리바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선 60만원 남짓할 구형 모델이었지만 이곳에선 정부 공식환율(달러당 4.3볼리바르)로는 무려 2232달러, 암시장 환율(달러당 8볼리바르)로는 1199달러에 달했다. 기자를 안내했던 통역원은 "TV 살 때도 달러가 있으면 1000달러나 싸게 살 수 있으니 다들 달러 구하려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계속되자 국영석유기업(PDVSA)도 결사적으로 미국과 유럽에 대한 석유판매에 매달렸다. 차베스는 틈만 나면 '탈(脫)미국'과 수출시장 다변화를 외쳤지만 정작 위기가 닥치자 기댈 언덕은 미국이었다.

    뒤에서 웃는 건 중국

    지난 16일 카라카스의 비센테나리오 수퍼마켓. 삼성, LG, 노키아와 함께 중국산 화웨이(華爲)와 ZTE 휴대전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판매원은 "삼성이나 LG만큼 화웨이나 ZTE도 팔린다"고 말했다. 차베스의 외환통제로 수입이 여의치 않자, 그 자리를 중국산 휴대전화들이 차고 앉은 셈이다. 시장 점유율은 삼성이 24%, 노키아와 화웨이가 각 17%, LG가 12%, ZTE가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달러 부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차베스를 중국은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대표단은 지난 4월 17일 베네수엘라에 200억 달러 차관 제공, 석유개발 및 화력발전소 건설 등 7개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차관도 50%는 달러로 내고 50%는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해, 베네수엘라를 위안화 국제화의 전초기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최대의 유전지대로 추정되는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유전의 개발을 담당할 회사의 지분 40%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현지 석유업계에 대한 영향력도 급속히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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