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서울대 야구감독 이광환

    입력 : 2010.05.28 23:38

    1992년 야구협회는 서울대 야구부와 치른 경기의 타율은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서울대가 열에 여덟 경기꼴로 콜드게임 패를 당하기 때문이다. 한 회 20점을 잃고 35대1로 진 적도 있다. 서울대 팀은 순수 아마추어다. 고교 팀과 갖는 연습경기도 번번이 진다. 공이 덜 날아가는 나무배트가 대학야구에 도입된 2000년 이래 홈런을 하나도 못 쳤다.

    ▶1994년 봄철 대학야구대회가 열린 동대문구장에선 안타를 친 서울대 선수가 베이스를 밟고도 아웃됐다. 공식대회 첫 안타를 때렸다는 감격에 방향 감각을 잃고 3루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불러주는 대회엔 빠짐없이 출전하지만 97년 봄철 리그엔 못 나갔다. 대학야구연맹에 등록비 300만원을 못 내 참가자격을 잃은 탓이다. 한 해 학교 지원금 800만원으론 대회마다 대여섯개씩 부러지는 배트 값 대기도 빠듯하다.

    ▶서울대는 재창단 27년 만인 2004년 가을리그에서 신생팀 광주 송원대에 2대0 첫 승리를 거뒀다. 끊임없이 갱신하던 한국 스포츠 연패기록을 199경기에서 멈춰 세우는 순간이었다. 선수와 감독이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야구광인 정운찬 당시 총장이 너무 기뻐 야구부 연습장에 야간 조명등을 선물했다. 그리곤 다시 56연패. 서울대 출신 교사 탁정근 감독이 2002년부터 주머닛돈을 털어 넣으며 이끌고 있다.

    ▶서울대 새 감독에 62세 이광환씨가 내정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서울대가 설립하는 야구지도자 육성프로그램 '베이스볼아카데미' 원장에 선임된 김에 야구부까지 맡았다. 그는 1989년 OB베어스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4개 프로구단 감독을 지냈다. 1994년엔 미국식 자율야구로 LG를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그의 서울대행(行)은 대학 총장이 시골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격이다.

    ▶이 감독은 야구 사랑 퍼뜨리기에 열심이다. KBO 육성위원장을 지내며 여자야구연맹과 전국대회를 출범시켰다. 막대기 위에 공을 올려놓고 때리는 티볼을 초등학교에 보급했다. 어린이들에게 야구의 맛을 깨우쳐주는 '야구의 씨앗'이다. 그가 지휘해도 서울대가 꼴찌를 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도 "최고 엘리트 서울대생들이 야구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원로 야구인이 '아름다운 꼴찌'와 어깨를 겯고 가는 길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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