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대통령의 절대 고독

  • 강천석·主筆

    입력 : 2010.05.07 19:49 | 수정 : 2010.05.07 20:05

    1962년 쿠바 위기와 2010년 천안함 위기 사이에서
    대통령 곁에 김정일 꿰뚫고 꺾을 賢者와 勇者 보이나

    강천석·主筆
    대통령은 국가 중대사(重大事)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 세상이 태평할 땐 이 힘이 대통령의 위세(威勢)를 사방에 떨치게 하는 재산이다. 그러나 국가가 안보 위기에 맞닥뜨리는 순간 이 권력이 대통령을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절대 고독 속으로 밀어넣는다. 수십만명의 장병들과 수백척의 군함, 수백대의 전투기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장병들은 실탄과 포탄을 장전하고, 군함과 전투기는 즉각 전투 지역을 향해 발진(發進)한다. 맞은편의 적(敵)도 똑같은 동작을 개시한다. 이것이 전쟁이다. 물론 위기 속 대통령이 혼자는 아니다. 장관들과 참모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에게 머리를 빌려줄 수 있을 뿐 어깨를 빌려주지는 못한다. 결국 국가 존망(存亡)에 관한 포괄적 책임은 대통령 어깨 위로 떨어진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2년 10월 15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몇 장의 쿠바 공중 촬영 사진을 내려다보며 이 절대 고독과 마주쳤다.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은 "쿠바에는 미국을 겨냥한 공격용 핵미사일이 없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동맹국 쿠바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해 방어용 무기를 배치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전날 고공(高空) 정찰기 U-2가 찍은 쿠바 내 소련 기지 사진 속에선 중거리 미사일(MRBM·사정거리 1800㎞) 중·장거리 미사일(IRBM·사정거리 3600㎞) 발사대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몇 주 후 발사대가 완성되면 워싱턴·뉴욕 등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소련의 핵그늘 아래 움츠리고 살아야 할 판이다. 미국과의 핵미사일 격차를 줄이려면 '미국 녀석들 바짓가랑이 안에 고슴도치 몇 마리를 집어넣는 수밖에 없다'던 흐루쇼프에게 허(虛)를 찔린 것이다. 케네디는 '배꼽에 칼이 꽂힌 듯한' 통증을 느꼈다. 세계가 핵전쟁의 단추를 건드릴 듯 스쳐간 쿠바 위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 '핵 종말(終末)의 시계(Doomsday Clock)'는 밤 11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케네디에게 쿠바 위기는 소련을 상대하는 '외부와의 전쟁'이자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진 정부와 여론을 통합해야 하는 '내부와의 전쟁'이기도 했다. 케네디의 양면(兩面) 전쟁은 10월 16일부터 10월 28일까지 13일 동안 계속됐다. 이 기간 동안 케네디를 수도 없이 진저리치게 만든 것은 쿠바를 건드리면 쿠바에서 수천㎞ 떨어진 베를린이 터지고 만다는 딜레마였다. 동독 안의 외딴섬 베를린에는 고작 수만명의 미군이 100만명이 넘는 소련군과 그 동맹군에 포위돼 있었다. 미국이 쿠바를 공격하는 순간 소련군은 베를린의 미군을 단숨에 삼켜버릴 것이고, 그것은 곧 인류 멸망의 핵전쟁을 의미했다.

    케네디 책상 위에 먼저 올라온 것은 쿠바의 소련핵무기를 아예 못 본 체 해버리거나 외교교섭을 통해 해결을 시도해보자는 안(案)이었다. 케네디는 고개를 저었다. 동맹국들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미국을 허수아비로 보게 될 것이고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공군과 육군이 기습적 공습과 상륙작전 방안을 제시했다. 케네디는 망설였다. 세계 제3차대전의 구멍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케네디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선택한 것이 해상봉쇄안이었다. 그래도 안 되면 공습을 단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케네디가 이 결정을 내린 순간 핵무기와 통상무기로 무장한 전 세계 미군이 출동태세에 들어갔다. 이 안을 추천한 인물은 케네디가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前) 정권인 공화당 사람들로 임명한 중앙정보국(CIA) 국장, 재무장관, 전(前) 정권의 주(駐) 소련대사와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었다. 전쟁 13일째인 10월 28일 케네디의 망설임과 인내와 결단은 마침내 "각하와 본인은 더 이상 전쟁의 매듭을 양쪽에서 잡아당겨서는 안 됩니다. 쿠바 미사일을 철수하겠습니다"라는 흐루쇼프의 친서(親書)를 받아냈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상대하고 있는 김정일이 흐루쇼프처럼 마지막 순간에 이성을 되찾을 인간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마흔한살엔 아웅산 테러를, 마흔다섯살 때는 KAL기 폭파를 직접 지시했다는 그의 전력(前歷)밖에 없다. 그의 아버지가 서른여덟살에 6·25전쟁을, 쉰여섯살 땐 청와대로 무장공비를 내려 보냈다는 가계도(家系圖)가 참고 자료다. 이 김씨(金氏) 부자(父子)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운명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몫은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인 김정일의 간계(奸計)에 휘둘리지 않는 현자(賢者)와 그의 광포(狂暴)함에 꺾이지 않는 용자(勇者)로 하여금 절대 고독 속의 대한민국 대통령 곁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 곁에 과연 그런 현자와 용자의 모습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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