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 박지성(29)이 한국축구의 슈퍼스타로 성장하는데 일등공신은 아버지 박성종씨였다. 박씨에 버금가는 '사커대디'를 꼽자면 요즘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라이언킹' 이동국(31��전북 현대)의 부친 이길남씨다.
이씨는 요즘 막내 아들 이동국의 경기를 보러 오지 않는다. 혹시라도 다칠까봐 심장이 떨려서 지켜볼 수가 없단다. 최근에는 이동국이 오른쪽 허벅지 뒷근육 통증을 호소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화들짝 놀라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이씨는 5일 스포츠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요즘은 며느리가 잘 뒷바라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라며 "가끔 전화해서 부상 조심하라는 당부만 합니다. 괜찮냐고 물으면 내가 걱정할까봐 동국이는 괜찮다는 말만 합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동국이 이날 K-리그 전남과의 원정경기에서 오른발목을 접질려 교체 아웃된 소식을 듣고 "큰 일이 없어야 하는데…"라며 걱정했다.
요즘 고향 포항에 머물고 있는 이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경주 인근 사찰 임정사를 자주 찾는다. 불교신자인 이씨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왔다. 요즘은 이동국이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23명)에 포함돼 본선 경기에서 골을 넣길 기도한다고 했다.
임정사는 이씨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2007년 이동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진출, 1년 반 동안 정규리그에서 단 한 골도 터트리지 못했다. 당시 아버지는 그 절에 들어가 머리를 삭발하고 불공을 들였다. 그런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이동국의 프리미어리그 성적표는 실패작였다. 아버지 이씨는 "나의 기도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은 아들이 월드컵에 맺힌 한을 풀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며 "제가 할 수 있을 걸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남아공에서 골만 넣을 수 있다면 다시 머리 깎는게 어렵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씨는 아들 이동국에게 축구를 시킨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 굴곡많은 축구 인생을 살아갈 때마다 초등학교 때 '왜 하기 싫다던 축구를 시켰을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동국은 포항제철동초 4학년 때 축구에 입문했다. 그는 이전 학교(포항동부초)에서 전과목 '올(all) 수'를 맞았을 정도로 학업성적이 좋았고, 달리기 등 운동도 잘 했다. 포항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육상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곤 했다. 아버지가 시킨 수영, 태권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축구를 시켜보지 않겠느냐는 지도자의 말에 설득된 아버지 이씨는 이동국을 전학시켜서 볼을 차게 했다. 포항제철중과 포항제철공고를 거치며 초대형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예고했던 이동국은 98년 포항 스틸러스 입단과 동시에 그해 바로 차범근호에 승선, 19세에 프랑스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 당시는 아들의 거침없는 성공으로 아버지의 목에 적잖은 힘이 들어가 있을 때였다. 이씨는 "프랑스월드컵 최종엔트리에 들었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어리둥절했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빨랐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후 두 차례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독일월드컵은 이동국 부자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버림받았던 2002년, 그들은 큰 충격에 휩싸여 술로 시간을 보냈다. 광주 상무를 거쳐 부활을 손꼽아 기다렸던 2006년 독일월드컵을 두달여 앞두고선 오른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또 주저앉았다. 독일에서 수술받은 아들은 힘겨운 재활치료를 했고, 아버지는 포항에서 한동안 술로 시간을 보내면서 거의 폐인처럼 살았다.
아버지 이씨는 이동국이 군인 신분으로 광주 상무에서 뛸 때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경기를 관전했다. 포항에서 광주까지 매번 직접 운전해 가서 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강행군을 했다. 그때마다 '근조'라는 글자가 적힌 영구차를 보는 날에는 아들이 반드시 골을 터트리는 그만의 좋은 징크스가 생기기도 했다.
이동국에게 이번 월드컵은 사실상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4년 뒤 브라질월드컵 땐 나이가 35세라 너무 많다. 그래서 이길남-이동국 부자는 남아공월드컵이 더욱 간절하다. 이번이 아니면 지난 8년간 그들의 가슴에 생겼을 '월드컵 응어리'를 풀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