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봄날은 간다'

    입력 : 2010.05.05 23:27

    몇 년 전 시인 100명에게 애창곡을 물었더니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를 가장 많이 꼽았다. 계간(季刊) '시인세계'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 조사에서였다. 대중가요가 시인들의 애송시(愛誦詩) 대접을 받은 셈이다. 천양희 시인은 "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멜까"라고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라는 첫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더니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 대목을 부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을 단 시도 많다. '이렇게 다 주어버려라/ 꽃들 지고 있다/(…)/ 지상에 더 많은 천벌이 있어야겠다/ 봄날은 간다.' 고은은 봄날의 허무 속에서 퇴폐와 탐미를 찾았다. 안도현은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고 탄식했다. 29세에 요절한 기형도는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라는 시를 남기고 생의 봄날에 떠났다.

    ▶'봄날은 간다'를 패러디한 시도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봄날은 간다/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정일근).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이승훈).

    ▶5일 떠난 원로 가수 백설희의 대표곡 '봄날은 간다'는 1953년 대구에서 유성기 음반으로 발표됐다.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밝은 봄노래의 정형(定型)을 벗어던졌다. 너무 환해서 더욱 슬픈 봄날의 역설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보여줬기에 이내 공감을 샀다.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목소리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돼 슬픔에 젖은 여심(女心)을 표현했다.

    ▶'봄날은 간다'는 이미자 배호 조용필 나훈아 장사익 한영애 등등이 제각각 음색으로 부른 불후의 명곡이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도 줬다. 25현(絃) 가야금 연주가 정민아는 지난달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연주회를 열었다. 같은 이름의 영화와 연극도 나왔다. 영화에선 남자가 변심한 여자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울먹였다. 백설희는 갔어도 노래 '봄날은 간다'를 향한 한국인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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