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도 반한 인품… 다시보는 이미륵의 삶

    입력 : 2010.05.01 03:00 | 수정 : 2010.05.02 21:08

    이미륵 평전
    정규화·박균 지음|범우|378쪽|1만5000원

    1936년 코펜하겐으로 가는 배 위에서 젊은 독일 남자가 말끝마다 '히틀러'를 붙이자 한 동양인 남자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히틀러가 누구요?" 젊은 남자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아니, 히틀러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오? 당신 어느 나라에서 왔소?" 그러자 동양인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독일에서 왔소"라고 응수했다. 히틀러 독재시대에 '히틀러'라는 존재를 무시하는 동양인 망명객의 당당한 모습은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화제가 되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이미륵(본명 이의경)은 189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나라가 사라지는 대격변을 겪은 그는 3·1운동에 참여한 뒤 1920년 독일로 망명했다. 뷔르츠부르크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1928년 뮌헨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작가로 변신한 그는 1946년 출간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βt)'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의 책이 독일 유명출판사인 피퍼에서 출간되자 독일의 신문들은 찬사를 보냈고, 한 잡지는 "올해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책은 외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그는 이미륵이다"라고 썼다.

    한국 독자에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죽음'이란 책을 통해 잘 알려진 독일의 저항단체 '백장미단'에 연루되어 사형을 받은 쿠르트 후버 교수는 이미륵의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1943년 후버 교수가 교수형을 당하자 가까웠던 친구들은 그의 가족들을 외면하고 모두 떠나갔다. 후버 교수의 부인 클라라를 길에서 만나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외면했다. 그러나 이미륵은 "클라라!" 하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훗날 후버 가족들은 동양인 이미륵을 "진정한 친구이자 의리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미륵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한국어를 연구하고 한국의 정서를 글로 써 독일인들에게 소개했다. 1948년 뮌헨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한국학과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던 이미륵은 1950년 51세 나이로 타계했다. 독일인들은 그를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오랫동안 기억했다. 이미륵의 인품에 매료되어 의학에서 동양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훗날 뮌헨대학 동양학부 교수가 된 볼프강 바우어 등 이미륵의 제자들은 독일의 주요 동양학자로 성장했다.

    이미륵의 생애와 철학을 작품과 편지글, 여러 지인(知人)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생생하게 복원했다. 여기 한 인간의 삶에서 인종과 국경을 넘어 인격과 학문으로 사람들을 감화시켰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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