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건국 대통령'을 다시 역사 속으로

  • 김일주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입력 : 2010.04.26 22:19 | 수정 : 2010.04.26 23:13

    김일주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4·19 학생시위에 의해 정국이 요동치고 있을 때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은 시위 학생들이 입원하고 있었던 서울대학병원을 찾았다. "내가 받아야 할 총탄을 너희들이 받았구나", "청년이 불의에 항거하지 않으면 그 나라에는 희망이 없는 거야!" 부상한 학생들을 위로하면서 우남은 그들과 함께 울었다.

    임기 후반의 과오 때문에 우남은 마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적(敵)인 양 비난받고 있으나,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산침략으로부터 목숨을 다해 지켜낸 주역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명을 걸고 지켰던 그 체제의 제도에 의해 하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위대성을 학습시켰다. 우남의 결단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 2차대전 후 우리와 비슷하게 독립한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권력자가 그렇게 순순히 권좌에서 물러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남에 대한 비판 중 가장 고약한 대목은 분단을 고착화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 북한주재 소련특명전권대사였던 '스티코프'의 일기는 미국이나 남한의 당시 정치지도자들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소련의 지시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설이 당시 착착 진행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이나 여순반란사건의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피해만을 주장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눈에는 이승만의 '건국'도, 박정희의 '근대화'도 모두 '통일'을 뭉개버린 반통일의 산물일 뿐이다. '건국'을 위해 장강처럼 흘렀던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가 이제는 정확하게 후세에 알려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초록이 물드는 4월에 50주년을 맞은 4·19학생의거와 엄청난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견인해 낸 풍찬노숙의 애국자 이승만을 생각한다. 이승만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4·19를 폄하한 일이 없다. 오히려 적극 두둔했으며, 국내문제를 특정인에게 일임했던 자신의 과오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했던 기록들이 나오고 있다. 우남이 하야하고 이화장에 있을 때 대만의 장개석 총통으로부터 위로 편지가 왔다. 우남은 답신에서 '정의를 사랑하는 우리 청년학도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라고 적고 있다.

    4·19 학생의거 정신과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은 배치되지 않는다. 독립과 건국과정을 통해 검증된 우남의 활동 흔적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이제 지하에 가두어 놓고 밟고만 있었던 이승만을 지상으로 끌어내어 역사 속에 진입시킬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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