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계속됐지만, 처음부터 부적절했던 ‘잘못된 만남’이 되고 말았다.
부산지검의 검사들에게 "10억원 어치"의 향응을 20여년간 제공해 왔다는 건설업자 정모(52)씨는 23일 자살을 시도했고, 그의 표적이 된 박기준(51) 부산지검장은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씨는 이날 오후 검찰의 구속집행정지 처분 취소 신청에 대한 법원 심문을 앞두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접대한 검사 10여명을 추가로 밝히겠다", "이대로 구속되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 등의 말을 하며 심란해하던 그는 가족과 통화하고 싶다며 주위 사람들을 내보낸 뒤 수면제로 추정되는 알약을 먹었다. 정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위세척을 받고 30분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정씨는 지난해 8월 구속됐다가 9월 관절수술 등을 이유로 다음달 16일까지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검찰은 구속집행정지 처분 조건인 주거지 제한 등을 위반했다며 구속정지집행 취소 신청을 했고, 이날 오후 3시에 법원 심문이 예정돼 있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에는 박 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자신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에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사태가 확산되자 검찰 조직에 부담을 덜어주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진에게 협박성 발언과 반말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돼 박 지검장이 큰 심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박 지검장은 1987년 창원지검 진주지청에 부임했다. 박 지검장과 정씨의 만남은 이 무렵 처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당시 진주·사천 지역에서 부친의 기업을 물려받아 건설업을 크게 하며 검찰 관계 기관인 갱생보호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었다. 이런 직책 덕분에, 검사들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관계기관 위원, 도의회 의원 등을 지내며 박 지검장을 여러 차례 만났고, 박 지검장이 임지를 옮긴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수십차례 박 지검장을 접대했고, 심지어 경남에서 부산까지 원정와서 접대했다"고도 주장했다.
박 지검장과 정씨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어긋난 것은 지난해 8월쯤 부터로 보인다. 당시 정씨는 대부업자로부터 사건청탁 명목으로 27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받다 구속됐다. 이후 검찰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 간부 승진로비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추가로 밝혀내 기소하면서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전부터 작성했던 '스폰서 리스트'를 구치소에서 보강한 정씨는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풀려난 후 올해 2월 부산지검에 진정서를 다시 제출하며 박 지검장을 압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 정씨가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박 지검장은 25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날 처지가 됐고, 정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