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내시경으로 몸속 혈관·세포 들여다본다

    입력 : 2010.04.15 02:54 | 수정 : 2010.04.15 08:45

    일반 내시경보다 10억배 선명, 세포 하나하나 관찰 가능하고
    혈관 속 지방 알갱이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기술도… 한국인 과학자들 잇단 쾌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병의 진단과 치료에도 적용된다. 암은 신체의 세포 이상에서 발생한다. 세포에 종양이 자라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암의 조기진단이 가능해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을 준다. 혈관에 지방이 쌓여 발생하는 동맥경화 역시 마찬가지. 최근 한국인 과학자들이 몸속 세포와 혈관을 볼 수 있는 기술을 잇달아 개발했다. 아직은 신체 내부가 아닌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지만, 조만간 의료 진단에 사용될 전망이다.

    일반 내시경보다 10억배 좋은 수퍼내시경 개발

    미국 하버드대 의대 윤석현 교수와 김필한 연구원은 일반 내시경보다 10억배 이상 해상도가 좋은 수퍼내시경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윤석현 교수는 KAIST에서 박사학위를, 김필한 연구원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김세화 박사가 특수 현미경으로 쥐의 혈관 속 지방을 동료 연구원과 함께 촬영하고 있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일반 내시경으로 세포에서 암의 근원이 되는 종양을 보려면 종양의 크기가 1㎜ 정도는 되어야 한다. 1㎜의 종양은 세포 10억개가 모인 규모이며 암의 초기에 해당한다.

    윤석현 교수의 수퍼내시경은 직경 1㎜의 초소형이면서 세포 하나하나를 보여준다. 수퍼내시경만 있으면 세포에 종양이 생기는 첫 순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어떤 식으로 증식하는지도 볼 수 있다. 윤석현 교수가 개발한 수퍼내시경은 사용하는 빛의 직경을 줄여 매우 작은 세포까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치 조각하는 칼이 뾰족할수록 미세한 선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내시경 빛의 직경이 작을수록 보다 작은 영역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수퍼내시경을 기관지에 가져가면 신종플루를 포함한 인플루엔자의 발생 과정도 지켜볼 수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기관지에 달라붙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면 치료제 개발도 쉬워진다.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런 성과를 거두었으며, 수퍼내시경으로 쥐의 대장벽에 흐르는 혈관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윤석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쥐에서 수행했지만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수퍼내시경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해당 내용을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소즈(Nature Methods)'에 발표했다.

    레이저로 혈관의 지방을 보여준다

    레이저를 활용해 혈관 속의 지방 알갱이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기술도 개발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바이오융합연구단 김세화·문대원 박사,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박정의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레이저를 활용해 혈관에 쌓여 있는 지방을 3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수준까지 보여주는 영상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관련 성과를 국제 학술지 '서큘레이션 리서치(Circulation Research)'에 지난달 발표했다.

    동맥경화 초기와 말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자체 제작한 특수 현미경으로 촬영한 동맥경화의 초기(사진 왼쪽)와 말기(사진 가운데) 사진. 동맥경화 초기에는 지방이 작은 알갱이 형태로 있다가 말기에는 각진 모습으로 뭉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쥐 대장의 혈관(사진 오른쪽)… 윤석현 교수팀이 촬영한 쥐 대장의 혈관 모습. 붉은색의 혈관이 그물 형태로 기다란 혈관 내부를 덮고 있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미국 하버드대 제공
    김세화 박사는 "동맥경화의 초기와 말기에 지방의 형태가 어떻게 다른지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쥐의 혈관을 떼어내 혈관 내부의 지방 알갱이를 촬영했다.

    혈관에 지방이 쌓이는 동맥경화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세화 박사팀이 개발한 레이저 시각화 기술은 혈관 속의 지방 알갱이를 3차원으로 보여주기에, 동맥경화의 진행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동맥경화 치료용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효를 시각적으로 판별하는 데 이번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연구진은 동맥경화 치료약이 쥐 혈관의 지방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했다.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이재영 교수는 "이번 기술이 내시경 형태로 발전한다면 동맥경화 치료와 의료 시장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을 포함해 신체 장기나 세포를 보여주는 기술 개발에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 또 다른 하버드 대학 연구진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매진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100여년 전 X선 촬영 기술이 의료계에 일으킨 변화를 또다시 만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신체의 세포를 내시경으로 보여주는 기술이 상용화되면 고가의 MRI나 CT를 대체할 수도 있어 의료 산업계에 미칠 영향이 크다. 아직은 이런 내시경이 산업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약을 복용하듯이 매우 편한 내시경 검진으로 빈번한 암 검진이 가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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