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에 중독된 혈관… 그에게 전쟁은 마약이다

    입력 : 2010.04.13 02:45

    아카데미 6관왕 '허트 로커'

    올해 아카데미가 '아바타'를 제치고 이 영화에 트로피 6개를 몰아준 것은 아마도 전혀 새로운 전쟁영화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일 것이다. 12일 시사회에서 공개된 미국 영화 '허트 로커(22일 개봉)'는 연출에서 인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 관객 스스로 전장(戰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관객은 미군 장갑트럭 속에서 이라크의 폐허를 바라보거나 거리 한복판에서 이라크 양민(良民)의 시선과 게릴라의 총구를 동시에 감지한다. 아군이 끝내 승리하는 식의 카타르시스라곤 없는 이 황토색 전쟁영화는 시종 목 마르고 가려운 느낌이다. 극장을 나선 뒤에도 여전한 그 느낌이 바로 이 영화가 해석한 전쟁의 그늘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폭발물 해체를 맡고 있는 미군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팀장이 폭탄 해체 도중 폭사(爆死)한 뒤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가 새 팀장으로 부임한다. 본국 귀환 38일을 남겨둔 상태에서 부임한 제임스는 뛰어난 폭발물 해체 전문가이지만 규율과 원칙을 모두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동료들까지 위험에 몰아넣는 그는 팀원인 샌본 하사(앤서니 매키), 엘드리지 상병(브라이언 개러티)과 자주 부딪친다. 어느 날 수색대가 해야 할 작전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엘드리지가 총격을 받고 쓰러진다.

    수십㎏짜리 방호복을 입고 폭발물을 해체하는 미군 이야기를 그린 영화‘허트 로커’는 전쟁영화의 새로운 소(小)장르를 개척했다고 할 만큼 신선하다. / 케이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는 '교전(交戰)이란 강력하며 종종 치명적인 중독이다. 전쟁은 마약이기 때문이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뉴욕타임스의 종군기자였던 크리스 헤지의 책에서 따온 이 문구는 이 영화의 결론이 아니다. 다만 전쟁이 어떤 사람들에게 얼마나 지독한 습관적 일상이 될 수 있는지 경고한다. 이 영화는 그 사례로 창작된 산물이다.

    영화 속 제임스 중사는 폭탄을 해체할 때 펑크난 자동차 타이어를 가는 듯한 표정이다. 그의 얼굴엔 두려움 대신 몰입만이 가득하다. 그가 승용차(EF쏘나타다!) 트렁크에 가득 찬 폭탄을 제거하면서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방호복을 벗어버리고 무전기까지 내던질 때는 방과 후 과학 실험실에 남아 이것저것 해보는 학생을 보는 것 같다.

    그는 얼핏 전쟁광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렇게 묘사하지 않는다. 나쁜 인물로 그리지도 않으며 영웅과는 더욱 멀게 만든다. 그의 전쟁 중독 후유증은 그가 무사히 본국에 귀환한 뒤 드러난다. 인마살상용 무기를 들고 파우치에 든 주스를 마셨던 그가 카트를 밀며 수퍼마켓에서 시리얼을 고를 때, 자신의 혈관이 화약(火藥)에 중독돼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 마지막 그의 선택은 관객을 얼떨떨하게 만든다. 요르단에서 찍은 이라크 폐허 장면이 무척 실감난다. 또 다른 이라크전 영화 '그린 존'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던 배리 애크로이드의 감각적 영상이 돋보인다. '허트 로커(The Hurt Locker)'는 '심각한 부상'을 뜻하는 미군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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