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 한국史… 그 아름답고 처절한 '인간드라마'

    입력 : 2010.04.12 06:03

    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구상 30년 만에 30권 결실
    5·18 광주… 양극화 문제… 4001편 '詩적 역사 쓰기'

    '만인보(萬人譜)'. "반만년(半萬年) 한국사에 명멸한 인간 군상의 부침과 영욕을 담아낸다"며 고은(77) 시인이 시작한 한국 시 문학 초유의 대형 기획이 30권(수록시 4001편)의 연작시집으로 마침내 완간됐다. 시인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 혐의로 육군교도소에 수감되며 구상한 지 30년, 1986년 첫 세 권이 출간된 후 25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지난해 7월 '만인보'(창비) 27~30권의 원고를 최종 탈고한 뒤 등장인물의 인명과 역사적 사실관계를 점검하는 등 4001편을 모두 새롭게 점검한 고은 시인은 출간 직전에 마지막으로 추가한 서문에서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라는 시로 완간의 소회를 밝혔다.

    30년에 걸친‘만인보’여정을 끝낸 고은 시인은“내 뒤에 벼랑이 아니라 들판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새 출발을 다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창비 출판사는 '만인보' 완간을 기념하기 위해 기존에 출간한 1~26권을 출간 시기별로 2~3권씩 합본하고, 이번에 새로 나온 27~30권을 더해 총 11책의 양장본으로 새롭게 단장한 전집을 냈다. 이번에 출간된 '만인보' 27~30권에 수록된 662편의 시는 연작을 태동케 한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안타깝고도 처절했던 드라마에 집중돼 있다. 이 가운데 시 '김준태'는 모두가 광주를 외면하던 시절 5·18 광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첫 시였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김준태 시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거리 어디에도 입이 없었다//(…)/ 젊은 시인 김준태가/ 거기 있었다/ 자신의 심장 내걸고/(…)/ 그는 썼다//(…)// 그 통곡의/ 그 오열의 노래를/ 신문사에 넘기고 자취를 감췄다/'

    이전 시편(詩篇)들에서 지속했던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상의 주요 인물과 그들이 겪은 사건들을 기록하는 작업도 광주 5·18의 정리와 함께 이어진다. 지난해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 낙화암'이란 시로 기록에 남겼다. '그 죽음은 무덤이 없어야겠다 차라리// 백년 이상/ 오늘일 것//(…)'

    위인들의 일화를 기록한 시편들은 시로 압축한 전기(傳記)다. 수록시 '원주 장일순의 집'은 국내 생명운동의 대부(代父)였던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이 원주에서 발생한 소매치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원주역 일대를 헤매고 다닌 사연을 기록했다. 그 소문을 전해 들은 소매치기가 제 발로 찾아와 피해자에게 훔친 돈을 돌려주자 무위당이 그에게 소주를 사준 사연을 담았다.

    시인이 꿈꾸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퇴고 12년'은 조선시대 영남과 호남 성리학의 거봉이면서 학문적 교류를 나눈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을 통해 지역감정 극복의 염원을 노래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영남과 호남 사이 천릿길/ 오고 간 세월 12년 아름답고녀/(…)/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과 마주설 때/ 새로 한 사람이리라/ 서로 한 사람이리라'

    수록시 '독거'는 부유층이 몰려 사는 압구정동과 성북동을 가난한 달동네 풍경과 대비하며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양극화 현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선남선녀들아/ 희멀겋구나/ 야들야들하구나/(…)/ 성북동 요정 청미각/ 장안 권문세도 제현들아// 낮은 아쭈 정관정요/ 밤은 소녀경/(…)/ 기우뚱/ 윗방 아랫방/ 그 오막살이/ 독거노파 수돌이 할머니네/(…)/ 생라면 반라면 그대로 먹는 아침/(…)/ 거기 한번 가 보아'

    30권 끝에 발문을 쓴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만인보는) 실로 '사람에 대한 끝없는 시적 탐구'이자 '시적 역사 쓰기'에 값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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