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 떠돌던 쇼트트랙계의 '검은 뒷거래'가 사실로 드러났다. 밴쿠버올림픽 2관왕 이정수(단국대)가 지난달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부상이 아닌 코치진의 '강압' 때문으로 밝혀졌다. 대표팀 일부 코치와 선수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국가대표 선발전 때 사실상 '승부조작'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선수 기용에 외압 있었다"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대표팀의 선수 기용에 대한 특별감사를 펼친 대한체육회는 8일 "이정수가 개인전에 못 나간 것은 전재목(37) 대표팀 코치의 강압적 지시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전 국가대표 안현수(성남시청)의 아버지 안기원(53)씨의 문제 제기가 결국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안씨는 지난달 24일 안현수의 인터넷 팬카페에 "이정수가 부상이 없는데도 코치와 연맹 임원이 의도적으로 출전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안씨의 글이 논란이 되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정수와 김성일(단국대)이 직접 "출전을 못하겠다"고 쓴 자술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대한체육회 감사 때 "전재목 코치가 불러주는 대로 사유서를 작성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전재목 코치는 작년 국가대표 선발전 때 선수들과 한 '협의'를 바탕으로, 자신의 제자인 곽윤기가 메달을 따게 하려고 강압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로 드러난 '나눠 먹기'
세계 최강의 위상을 자랑해오던 한국 쇼트트랙의 국가대표가 되는 길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르지 않았다. 빙상연맹은 작년 4월 말 밴쿠버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2009~2010시즌에 출전할 남녀 각각 5명씩의 쇼트트랙 국가대표를 선발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선발전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일부 코치와 선수가 모여 "함께 국가대표로 뽑힐 수 있게 돕고, (대표가 돼 출전하는) 국제대회에서는 골고루 메달을 따도록 하자"고 '모의'를 했다.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전 코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개나 딴 이정수에게 세계선수권 출전 양보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쇼트트랙계에서는 같은 코치에게 배우거나 학연 등으로 엮인 '파벌'이 경쟁자의 레이스를 교묘히 방해한다는 설이 파다했다.
대한체육회는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이번 사건의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고 연맹 차원의 조사가 어려울 경우 '형사고발' 조치를 할 것을 주문했다. 빙상연맹 박성인(72) 회장도 "국민께 면목이 없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빙상연맹이 자신의 치부를 파헤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국 쇼트트랙이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