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의 한 시골마을 무덤에 의문의 쇠말뚝 수백 개가 꽂혀 있는 것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뉴시스 3월 22일

사건 현장인 전남 무안 해제면 대사리 S마을은 노(魯)씨 집성촌으로 64가구 129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노인으로 양파·마늘·벼 농사를 짓고 산다. 마을에서 걸어서 5~20분 거리 둔덕과 야산에 수백 기(基)의 조상 무덤이 있다.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이 마을 무덤 20기에서 쇠말뚝 379개가 나왔다. 200여개가 고추 농사에 쓰는 알루미늄 고춧대(고추 지주대)였다. 두께 3㎝짜리 비닐하우스 파이프, 1~1.5㎝짜리 철근도 나왔다.

길이가 80~150㎝인 말뚝은 무덤 깊숙이 박혀 겉으론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달 23일부터 사흘 동안 무안국제공항에서 금속탐지기 한 대를 가져와 말뚝 20개를 찾아냈다고 한다.

양파밭에 봄볕이 내리쬐고, 바닷바람이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이 마을은 명당으로 통했다. 이 마을 동계장이 조상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범인은 말뚝을 시신 머리가 놓인 부분과 봉분 중앙에 집중적으로 박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말뚝을 발견한 사람은 마을 이장(里長)이다. 그는 설날인 2월 14일 성묘를 하다 파헤친 자국을 발견했다.

이장은 이날 봉분에 박힌 고춧대 4개를 찾았다. 그는 "남 부끄러워서 쉬쉬했는데 그 후로 밤만 되면 환자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당께"라고 했다. 이장은 지난달 6일 다시 묘소를 찾았다.

흙을 손으로 더듬자 5㎝ 깊이에 숨어 있던 말뚝 13개가 더 나왔다. 이장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범인을 잡아볼까 했는데 금세 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그러자 주민 모두가 너도나도 말뚝 찾기에 나섰다. 한 주민은 무덤을 손으로 살살 파헤칠 수 있도록 떼를 입힌 봉분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3월 18일 세 번째 무덤에서 말뚝이 나오자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동계장 선친과 형님 내외, 조카 무덤 5기에서 말뚝 173개가 발견됐다.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고추 지지대, 비닐하우스 파이프, 철근이었다.

마을 동계장(洞係長)을 맡고 있는 노진운(76)씨도 같은 날 조상 무덤 5기에서 말뚝 83개를 찾았다. 이후 노씨는 일주일간 90개를 더 찾았다. 그는 "가위도 눌리고 숭악한 꿈을 꿨는데 우리 집안 무덤에서 말뚝이 제일 많이 나와부렀써"라고 했다.

피해를 입은 가구는 모두 아홉 집이다. 이 중 노씨가 일곱 집이고 윤씨가 두 집이다. 동계장은 "범인이 유독 도로 아래쪽에 있는 '작은마을'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집 조상 묘를 건드렸다"며 "분명 마을 사정을 훤히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경찰은 "범행도구가 어디서 났는지 집착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철근은 50m 떨어진 마을 어귀 도로 공사장에 쌓여 있고 비닐하우스 파이프와 고춧대는 집집마다 갖고 있다.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양매리의 삼거리 철물점 주인 노일중(63)씨는 "남의 집 고춧대를 뽑아 온다고 해도 모르고 고추 심을 때 원체 고춧대가 많이 필요해 철물점에서 200개씩 사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했다.

마을에서 고춧대 가격은 개당 300~400원 정도로 싸다. 경찰은 "탐문을 통해 무속인에 의한 범행,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 가능성을 낱낱이 캐고 있다"고 했다. 무속인 범행으로 의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11년 전 비슷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 묘소,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선영, 조선조 4개 왕릉을 포함한 전국 38개 무덤에 식칼을 꽂은 사건이었다. 범인은 부산에 사는 무속인 양모(59)씨였다.

그는 당시 경찰에서 "두통을 낫게 하기 위해서 무덤 머리 부분에 식칼을 꽂았다"고 진술했다. 이런 점에 착안해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이 마을에 살다가 외지로 떠난 노모씨다.

그는 10여 년 전 한 회사에 취직해 마을을 떠났다. 작년 여름 혈액암으로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작년 초부터 심장이 안 좋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노씨의 부인이 무속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입수하고 해제면에 있는 총 3대의 CCTV에서 지난 3개월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무속인이 아니라면 다른 원한 관계에 의한 것은 아닐까.

해제면사무소 직원은 "다른 마을은 10년씩 이장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마을은 이장이 자주 바뀐 편"이라고 했다. 이장은 "우리끼리는 사이가 좋다"고 손사래 쳤다.

한 주민은 "2002년 태풍 루사가 마을에 불었을 때 당시 이장이었던 양모씨가 친한 사람만 면사무소에 피해보상 서류를 넣어줬다고 해서 주민들이 멱살을 잡고 싸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마을에서 '노씨 일은 노씨가 하자'고 해서 양씨가 이장에서 물러났다"고 했다. 그는 경찰에서 "양씨와 의형제처럼 지내는 두 명도 노씨가 아닌 다른 성씨라서 소외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진술했다. 이 세 사람은 마을에서 묘 이장(移葬)과 유골 뼈 맞추는 일을 해왔다고 한다.

동계장 노씨는 이 주장에 반박했다. "며칠 전에도 양씨가 범인을 빨리 잡을 수 있도록 돈을 걷어 경찰들 밥이라도 먹이자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양씨 역시 "할 말이 없고 경찰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했다.

S마을은 원래 옆 마을과 함께 '흰새래 마을'로 불렸다. 바닷바람을 맞는 산(102m) 아랫자락에 있다. 가파르지 않은 둥근 산맥에는 흰 새, 즉 백학(白鶴)이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