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세계적 건강보험' 옛말 되나

입력 2010.03.25 23:03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최근 미국 하원(下院)이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통과시켜 이제 겨우 우리나라 건강보험과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오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도입한 건강보험은 이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건강보험이 도입된 후 1980년대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개인이나 회사나 건강보험 재정(財政)을 키워갈 여유가 생기면서 보험 적용 대상은 날로 확대됐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를 거치면서 1989년에는 전(全) 국민 건강보험 시대가 열렸다. 도입한 지 12년 만에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類例)가 없었다.

요즘 도시 주민의 경우, 3000원만 있으면 1시간 안에 예약 없이 전문의(專門醫)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은 1500원만 들고 가면 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이렇게 의료 접근성이 뛰어난 나라를 본 적이 없다.

전국 어느 병원을 가도 건강보험이 정한 일정 기준이 있기 때문에 진료비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환자 즉 의료 소비자들은 가격보다는 의료 기술의 질이나 서비스 수준을 병원 선택 기준으로 삼게 됐다. 건강보험 도입 전에는 진료비 부담을 느낀 환자들이 주로 소규모 의원이나 국공립 병원을 찾았으나, 이제는 친절하고 실력도 좋은 민간 대형병원이 의료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공 의료기관은 급속히 쇠락하는 역기능도 발생했다.

우리나라 의료비는 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인공관절 갈아 끼우는 수술이 미국에서 건강보험이 없다면 8만~10만달러(한화 약 1억1000만원)인 반면, 국내 병원은 아무리 비싸도 1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건강보험 덕에 환자가 내는 돈은 300만원이면 충분하다. 미국에서 1000달러까지 받는 소화기내과 전문의 위 내시경 시술을 한국에서는 3만~5만원이면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건강보험에 가입된 장기 거주 외국인들은 우리의 건강보험이 "최고"라고 엄지를 세운다.

우리나라 병원들이 낮은 진료비 환경에서도 성장한 것은 박리다매(薄利多賣) 구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커졌고, 이를 통해 국내 의료시장의 외형은 지난 20여년간 매년 10% 이상 커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점(頂點)에 온 느낌이다. 인구 구조는 고령화 사회로 바뀌어 노인 의료비가 건강보험 재정(財政)의 30%까지 육박했다. 이 수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국민이 갖는 의료 수준에 대한 기대치 또한 높아졌다. 예전에 배를 갈라야 했던 수술은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누구나 배에 구멍을 뚫어 암 덩어리를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을 찾는 식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의료비 상승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은 그렇게 늘어나지 않는다. 올해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다. 양질(良質)의 의료, 저렴한 진료비로 정말 세계적인 복지(福祉)제도가 된 우리의 건강보험이 앞으로도 계속 지금 수준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보험료를 올리거나,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거나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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