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대사

    입력 : 2010.03.26 02:54

    張勉 초대 주미대사 붓글씨로 신임장 작성

    '신임장 장면, 임 특명전권 대사, 보 북미합중국 주재 특명전권 대사.'

    대한민국 제1호 대사(大使)의 신임장(letter of credence)은 현대 외교문서와는 모양과 형식이 크게 달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49년에 장면(張勉·가운데 사진) 박사를 주미 대사로 인정해 달라며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신임장<왼쪽 사진>은 타자기도 아닌 붓글씨로 작성됐고, 세로로 쓰여 있었다. 이 대통령과 당시 임병직 외교부 장관의 붉은 도장도 찍혀 있었다. 장면 박사를 대한민국 1호 대사로 미국에 보낸 이 순간은 대한민국 62년 외교사의 중요 장면 중 하나였다.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자유 진영 국가들이 우리 정부를 잇달아 승인했고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지위를 굳히게 됐다. 1949년 1월 1일 미국이 가장 먼저 우리 정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자, 정부는 당시 유엔 파견 수석 대표였던 장면 박사를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미국은 그해 3월 20일 주한 미국 특사로 와 있던 존 무초 대표를 초대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 장면 박사가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된 것은, 48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3차 유엔총회 대한민국 대표단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장면 박사는 3개월에 걸친 전쟁에 가까운 외교활동을 통해 그해 12월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장 박사를 주미대사로 임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우리 기억 속에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기억되는 장면 박사의 외교관으로서의 활약도 본격화됐다.

    장 대사는 유엔총회 수석 대표 때 받은 여비를 아껴 3000달러짜리 뷰익 자동차를 구입해, 트루먼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참석했다. 장 대사는 "차를 잡느라 애를 쓰다 보니 한 나라의 대사가 쪼르르 비를 맞았다. 그때의 비애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49년 3월 25일 주미 한국대사관을 개설하고 외교활동에 들어간 장 대사는 다음해 6월 25일 전쟁이 터지자, 미국에서 외교관으로서 전쟁을 수행했다.<오른쪽 사진> (1950년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연설하는 장면 대사)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 국회의원들을 만나 미국의 파병을 요청했고, 유엔 안보리에선 유엔군 파병 결정이란 성과를 냈다. 신생 국가 주미대사에겐 본국의 빈약한 지원을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새로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애국심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장 대사는 직접 라디오에 출연해 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지지도 호소했다. 장 대사는 주미대사 재직 중이던 50년 11월 2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대한민국 1호 대사는 51년 2월 양유찬 대사에게 주미대사 자리를 넘겨줬고, 귀국 뒤에는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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