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서 꽃핀 '아시아공동체학교의 기적'

    입력 : 2010.03.20 03:10

    운동장 없는 '전세살이'에… 폐교 기증받아 리모델링
    각계각층에서 도움 손길… 직접 자원봉사 나서기도
    다문화 가정 자녀 40명… "멋진 학교모습에 신나요"

    19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4동 1003의 1 아시아공동체학교의 널찍한 운동장. 꽃샘추위를 이겨낸 봄 햇살이 따뜻했다. 하얀색 학교 건물에서는 "위잉~"하는 기계음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학교 건물 곳곳에 무인경비시스템을 다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시스템은 부산의 보안시스템 회사 시티캅이 이 학교에 헌정하는 것이다.

    이 학교를 설립한 사단법인 아시아공동체의 박효석(43) 상임이사가 입은 검은색 바지와 점퍼에는 빨간색·회색 페인트 방울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천사의 도움 덕에 1003번지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이름처럼 한국인과 아시아계 외국인 사이에 태어난 2세, 일명 '코시안'을 위한 대안학교다. 2006년 9월 설립된 후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2004년 말 폐교된 옛 배정초등학교 건물에 지난 연말 정착했다. 남구와 시의원 등이 나서 배정학원측을 설득, 거의 공짜로 입주할 수 있게 도왔다. 그리고 '작은 도움'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와 대대적인 내·외부 수리를 하고 이번 봄 학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칠 수 있어 '1003번지의 기적'이 된 것이다.

    19일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위한 대안학교인 부산 아시아공동체학교 교정에서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팔을 들어 하트를 그리고 있다. 아시아공동체학교는 폐교를 제대로 된 학교로 꾸미는 데 도와준 자원봉사자 2000명을 초청해 20일 기념잔치를 연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이 학교의 '유랑 인생'은 길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고 '멋진 한국인'으로 자랄 수 있게 돕자는 뜻에 공감한 박 상임이사의 친구 김태균(43·사업)씨가 2006년 9월 문현동에 있는 자신의 3층짜리 건물을 내놓으면서 학교가 시작됐다. 하지만 건물이 50년 이상 낡아 재건축에 들어가야 했다.

    할 수 없이 건물을 비우고 작년 1월 남구 대연동 한 사무실을 임차해 쓰다 지난 1월 이 폐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박 상임이사는 "진짜 학교 건물이었던 곳이라 늘 부족했던 교실과 운동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직접 살펴보니 유리창 수백장은 거의 깨져 있었고, 건물 안팎은 검은 얼룩과 벗겨진 칠 등으로 황량했다. 3층 도서관은 아예 불에 타 있었다. 전기와 수도도 끊겨 창고로 쓰기도 힘든 상태였다. 박 상임이사는 "이를 어떻게 고쳐 쓰나 하고 막막했었다"고 했다.

    이런 딱한 사정이 지역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밀려들었다. 작년 11월 말 황윤주(44·공구상 운영)씨로부터 페인트 10통을 기증받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도움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현대건설이 유리창 200여장을 달아줬고, 남해해양경찰청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은행 등은 교실 내부 철거 및 단장을 해줬다. 한전은 전기, KT는 인터넷 및 전화선, 한국화약은 바닥재를 기부했다. 남구는 학생들 점심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다. 학교 외벽 디자인 안을 마련해 준 경남정보대 조윤배 교수, 남구자활센터, 부산연합청소년자원봉사단, 현대건설 직원, 동래고 학생들,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학생들, 남천성당 빈센치오회 회원들, 황련사 불자들, 반딧불 봉사단, 롯데건설 자원봉사단, 성심여고 13회 동창회, 오륙도합창단 단원,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남구갑) 등등이 돈이 아니면 '몸'으로, 또는 '재능'으로 이들을 도왔다. 누군가 페인트를 칠하고, 다른 이는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또 어떤 이는 도배를 하거나 형광등을 달면서 학교 모습은 달라져갔다.

    부산을 넘어 서울 어린이어깨동무·국제부녀회, 포항공대 학생들 등 서울·대구·포항에서도 도우러 왔다. 최근 3개월간 자원봉사한 사람만 2000명이 넘는다. 자원봉사자 최성민(24·동서대)씨는 "자주 자원봉사를 오는 200여명으로 아예 서포터스를 결성,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고, 여한용(61) 사단법인 아시아공동체 다문화가정지원팀장은 "무역회사에서 퇴직하고 자원봉사하러 왔다가 봉사에 중독돼 아예 자리를 차고앉았다"고 했다.

    변하는 학교 모습에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이 학교 아이들이다. 어머니가 네팔인인 5학년 선호(12)양은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운동장이 있어 좋다"며 "언니 오빠들 덕에 멋지게 변하는 학교 모습을 보니 신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9개국 다문화 가정 자녀 40명이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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