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경력법관제'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조선일보 지난 18일자 A1면에 "한나라당이 10년 이상의 검사·변호사·법학교수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경력법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경력법관제'의 법률적 의미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력법관제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사법시험을 거쳐 임용된 판사가 법관경력을 유지해 가는 제도,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중에서 판사를 임용하는 것은 '법조일원화'

우리나라 현행 법관인사제도는 사법시험을 치르고 연수원만 거치면 곧바로 판사로 임용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를 법조계에서는 "법관 경력을 유지해가는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career system'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career system'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경력법관제'이지요. '직업법관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사진>(대검찰청에서 바라본 대법원 모습)

career는 보통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이 커지는 직업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career system'은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이 평생의 직으로 공무에 종사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연수원을 갓 졸업해 판사로 임용된 뒤, 선배 법관들로부터 도제식으로 교육을 받으며 점점 그 권위에 걸맞은 법관으로 다듬어지는 것이지요.

국가공무원법에도 '경력'이라는 말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법에선 일정한 시험을 통과해 임용하는 공무원인 '경력직공무원'에 대해 "실적과 자격에 따라 임용되고 그 신분이 보장되며 평생토록 공무원으로 근무할 것이 예정되는 공무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법관도 '경력직공무원'에 포함됩니다. 이처럼 법관이 처음부터 국가공무원으로서 관료로 커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법관료제'를 채택하고 있다고도 말합니다. 정리하면 경력법관제, 직업법관제, 사법관료제 이 3가지 용어는 우리나라 현 법관인사제를 설명하는 비슷한 의미의 말들입니다.

이 같은 제도는 독일 등의 대륙법 체계를 받아들인 것으로,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법관의 사회경험 부족에 따른 당사자들의 불만, 법관의 관료화·서열화·독선화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미국처럼 사회경험이 풍부한 법조인 중에서 법관을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나라당의 사법개선안도 이 같은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고, 법원에서도 이 같은 개선 방향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류정 사회부 법조팀 기자

그러나 법조계에선 사법개선안에서 쓰인 '경력법관제'라는 용어에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그동안 법률 전문가들이 써오던 학술용어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에서 '경력직 채용'이라는 말을 쓰듯, '다른 경력을 갖춘 법관'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말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반대 의미의 학술 용어가 이미 정착돼 있는 만큼, 다른 용어를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법조계는 이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용어는 '법조일원화'라고 말합니다. 법조일원화는 판사, 검사, 변호사 간의 직업 이동이 자유로운 인사구조, 특히 판사는 검사나 변호사 경험이 있는 법조인 중에서 선발하는 구조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