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매력남… 감옥서 인생 배운 청년

    입력 : 2010.03.11 02:48

    아카데미상 못받은 秀作 2편 동시 개봉

    올해 아카데미 수상 또는 후보작 중 상당수가 아직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주말엔 유력한 후보작이었으나 수상하지 못한 작품 2개가 동시에 개봉한다. 하나는 인상적인 드라마, 나머지는 강렬한 범죄 영화다.

    ●조지 클루니 주연 '인 디 에어'

    해고 통보하며 살아온 회사원가족 소중함 알게 되면서…

    도대체 '쿨(cool)하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룻밤 이끌려 사랑을 나눈 뒤 전화번호도 묻지 않고 헤어지는 것? 전세금 낼 돈 모자란데 500만원짜리 자전거 사는 것? 그것도 아니면 술 마시고 늦게 일어나 출근 대신 동해안으로 쏘는 것? 이 모든 것을 '쿨하다'고 치자. 다만 그 쿨함의 설거지는 엄청나게 핫(hot)할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쿨해 보이는 배우 조지 클루니의 영화 '인 디 에어(원제 Up In The Air·11일 개봉)'는 쿨하게 살아온 남자가 영락없이 추레하고 비굴한 꼴을 당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 정말 끈적거린다.

    주인공이 여동생 부부를 위해 해주는 일이라곤 그들의 사진을 들고 미국 각지를 다니며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것뿐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연 300일가량을 비행기를 타고 출장 다니는 회사원. 그의 역할은 회사 대신 해고 통보를 하는 일이다. 그는 늘 외지에 나가서 낯선 얼굴을 향해 해고 사실을 알려주고, 그렇게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도시 바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자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나 처음으로 '관계'에 대한 갈증을 느낀 그는 훌훌 털고만 살아왔던 삶에 문득 회의를 느낀다. 게다가 신입사원 내털리(애나 켄드릭)는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해고 통보를 해서 출장비용을 줄이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라이언의 인생이 통째로 흔들린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음악 거장 우디 거스리의 명곡 '디스 랜드 이즈 유어 랜드(This Land Is Your Land)'을 솔(soul)로 개작한 노래와 함께 시작한다. 공항과 호텔 아니면 상공에 떠있는 그는 핸드캐리 가방에 들어갈 만큼의 짐만 소유하고 산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친구든 애인이든 기내에서 주는 세면도구만큼의 중요도를 부여하는 그는 어떤 관계든 결코 소유하거나 엮이려 들지 않는다.

    세계적 경제 침체기에 해고 통보 대행이라니, 이 남자의 직업은 또 얼마나 그 인생과 닮았는가. 짐을 싸고 바퀴 달린 가방을 익숙하게 끌며 공항에 가서, 짐 적고 끈 없는 신발을 주로 신는 동양인 뒤에 줄서는 이 남자의 삶은 참으로 경쾌하고 가뿐해 보인다.

    그런 그가 ORD(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뭐했으며 IAD(워싱턴DC 덜레스공항)에선 어땠는지 대화 가능한 여자를 만난 데다 그 여자 또한 늘 상공에 떠있는 인생이니 ICN(인천공항)도 한번 가기 쉽지 않은 한국 관객은 저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남자의 삶을 당돌한 신입 여사원이 뒤흔들더니 우연히 만난 그 여자도 자꾸 이 남자를 땅바닥에 끌어내린다. 평생 해고 통보만 하고 살아온 이 남자, 그들에게 가족이 있어 고통을 이겨냈음을 전혀 몰랐다. 퇴근 후 현관 들어설 때 "오늘 어땠어?" 하고 묻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이 남자, 영화 마지막에 호되게 또 한방 먹는다. 엔딩 크레딧 중간에 독특한 사연이 등장해 끝까지 앉아 있어야 영화 관람을 마칠 수 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감독·남우주연상 등 5개 부문 후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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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예언자'

    교도소서 폭력조직 두목 만나 청부살인하고 심복이 되는데…

    작년 영화제에 유독 끔찍한 영화들이 많았다더니, 이 영화 '예언자(11일 개봉)'가 그중 하나다.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 강렬하고 텁텁한 작품은 감옥에서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가 커가는 일종의 '범죄 성장영화'다. 살인을 지독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포함돼 있어, 비위 약한 사람이나 태교 중인 사람은 절대 보지 말 것을 권한다.

    감옥에서 인생을 배워가는 주인공(왼쪽)은 외출을 허락받아 청부살인을 할 만큼 대담해진다(오른쪽). / 판시네마 제공

    부모 없이 소년원에서 자란 아랍계 19세 청년 말리크(타하 라힘)는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 안에서 만난 코르시카계 폭력조직 두목 루치아니(닐스 아르스트럽)는 말리크에게 다른 죄수를 죽일 것을 지시한다. 겁에 질려 청부살인을 한 뒤 말리크는 이후 루치아니의 심복이 된다.

    3년 만에 모범수가 되어 외출이 가능해진 말리크는 루치아니의 지시를 받고 점점 더 깊이 범죄조직에 빠져든다.

    이 영화는 순박한 아랍계 청년이 감옥 속에서 이탈리아계와 아랍계, 코르시카계 폭력조직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스스로 서는 법을 깨닫는 과정을 그렸다. 낯선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두 손에 꽉 차는 붓을 움켜쥐고 초대형 화선지에 수묵화를 그리듯, 힘 있고 굵은 연출을 보여준다.

    객석에서 오금 저리는 비명이 나오는 것은 주인공이 면도날로 목 혈관을 그어 살인하는 장면이다.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을 꼭 묘사해야 직성이 풀리는 감독들이 있는데, 영화는 보고 싶고 그 장면은 피하고 싶은 관객에겐 무례한 연출이다.

    아랍인으로 코르시카계 두목의 꼭두각시가 된 주인공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한다. 스무살을 갓 넘은 그에게 감옥은 우주이며 폭력은 도덕이 돼버린다. 어쩔 도리 없이 더 깊은 범죄 속에 빠져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영화 속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에 벌건 엉덩이를 드러낸 채 앞으로 달려가는 노루와 닮았다. 맨 처음 입감될 때 그는 "이 안에 친구나 원수 있나?" 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 고개를 가로저었던 주인공은 금세 친구와 원수를 동시에 만들며 감옥 속 세계에 동화돼 간다.

    이 영화의 화면은 무척 공격적이다. 관객은 자주 겁에 질리고 소름 끼친다. 음향 역시 관객을 압도하거나 조급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조차 그런 연출에 썩 어울리는데, 특히 두목 루치아니를 연기한 닐스 아르스트럽은 정말 악독한 사람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외출 나갔다가 바닷가에 들르는 장면만이 거의 유일한 쉼표 역할을 한다.

    영화는 거칠고 사정없이 반전되면서 매우 강한 이미지를 남기고 끝난다. 결국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 이미지의 영화다.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보다 음미할 잔영을 남긴다. 하얗게 스러지는 숯이 아니라 순식간에 휘발되는 불꽃이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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