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3大 황제 보약' 옛 방식으로 재현한 이원욱

    입력 : 2010.03.06 02:58 | 수정 : 2010.03.06 09:08

    좌충우돌 말썽꾼이 한의학의 미래를 짊어진다
    대학때 제적, 해병 자원입대, 용달차 기사·PC방 운영하다 한의사 되려고 다시 입시공부…
    中 황제 장복한 '황실보약' 경옥고·공진단·청심환 등 동의보감 3000가지 약 중 100여종 재현
    결과는 학생들에게도 알려줘

    이원욱(李原旭·36)은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재학시절 '괴상한 운동권'이었다. 선배들이 사주는 고기 맛에 반해 서클에 들어가더니 늘 투쟁의 선봉에 섰다. 교수들이 미워할 일만 골라 한 그는 운명의 그날도 맨 앞에 섰다.

    그런데 돌아보니 혼자였다. 학교에서 제적된 며칠 뒤 그는 고향 경남 진주로 내려갔다. 부모에게 시치미 뚝 떼고 빈둥대던 그에게 종말(終末)이 찾아왔다. 제적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주소를 안 바꾼 걸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어머니에게 두들겨맞던 그는 동생의 돼지저금통을 들고 탈출을 감행했다. 돼지의 뱃속에는 2만7000원이 들어있었다. 부산 해양대에 다니는 친구 집에 머물다 이종 형을 만났다. 이미 어머니가 이종 형에게 '수배령'을 내린 뒤였다.

    공대생에 운동권, 해병대 출신, PC방 주인이었던 남자가 한의사로 변신했다. 이원욱은 옛 방식대로 경옥고를 재현했다. 다채로운 경력답게 그의 연구소에는 공룡 뼈, 두꺼비, 혈여탄(사람 머리카락을 태운 것) 등 희귀 약재가 널려 있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원욱이가 가출했다. 무조건 잡아와라!' 다음날 친구집에서 눈을 떠보니 어머니 모습이 가물거렸다. 그는 "죄를 지으니 헛것이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바로 그의 코앞에 있었다. 그는 팬티 바람으로 도망쳤다.

    그 차림으로 어딜 갈 수 있을까. 이원욱의 탈출기(脫出記)는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 말썽꾸러기가 지금 한의사가 되더니 황실보약(皇室補藥)의 권위자로 불리게 됐다. 황실보약은 중국 황제가 장복(長服)했다는 약이다.

    음기를 보충하는 경옥고(瓊玉膏), 양기를 북돋는 공진단(拱辰丹), 중풍에 특효인 청심환(淸心丸)이 그것이다. 보약이라면 바퀴벌레 씨도 말리는 게 한국인들이다. 엉터리 보약이 판을 칠 모든 요건이 완비된 게 바로 이 땅이다.

    이원욱은 동의보감(東醫寶鑑) 처방에 따라 옛 방식으로 그걸 재현해냈고, 경옥고 한 단지에 200만~300만원씩 받는 양심불량자를 색출해내고 있다. 그리곤 자기가 알아낸 한의학 지식을 동료 선후배들에게 서슴없이 내놓고 있다.

    해병

    이원욱은 2남1녀 중에 둘째였다. 부모는 진주시장에서 옷감 장사를 했다. 느닷없이 대학에서 쫓겨난 아들은 부모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군 입대를 생각했지만 입영 시기가 너무 멀었다. 그때 눈에 번쩍 띄는 글귀를 발견했다.

    '해병대에 지원하면 다음달에 입대할 수 있습니다!' 옳다구나 싶은 이원욱은 앞뒤 가리지 않고 해병 765기로 입대했다. 1995년 가을의 일이다. 훈련소 첫날 교관이 '집에 다시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다.

    ―손을 들었습니까.

    "큰일 날 뻔했지요. 멋모르고 손든 아이들은 낭패를 봤거든요."

    ―해병대가 군기가 세지요.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정말 많이 맞았어요. 목욕탕에서 면도할 때 거울 본다고 맞고, 밥 먹을 때 고개 들었다고 맞고. 중대 대항 축구시합에서 자살골을 넣었을 때는 선임병들까지 기합을 받았지요."

    ―부당하다고 느꼈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게 제가 선배가 돼 후배들이 면도할 때 거울 보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더군요. '감히 거울을 보고 면도를 하다니, 군기가 빠졌구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하."

    ―제대 후에는?

    "제적당하긴 했지만 전공이 자동차공학이었잖아요. 군에 있을 때 수송병과였는데 사실 바다에서 싸우는 해병에게 차가 뭐가 필요있겠어요. 제대한 뒤에는 1t 트럭을 끌고 용달차 기사를 했지요. 당시만 해도 진주에서 서울까지 장거리를 뛰면 일당이 20만원이나 됐습니다."

    ―대학생에서 용달기사가 됐군요.

    "아홉달 정도 그 일을 하다 보니 PC방이 전망이 있어 보였어요. 서울에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때였습니다. 제가 친구와 1000만원을 들여 만든 PC방이 진주에서 세 번째로 생긴 거였어요."

    ―대박이 났습니까.

    "얼마 동안은 수입이 짭짤했는데 우후죽순처럼 PC방이 생기니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가게는 시간당 2000원을 받았는데 다른 곳은 300원까지 내려갔거든요.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방황하다 다시 공부를 하게 됐지요.

    "어느 날 부모님과 술을 함께 마시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푸념하는 거예요. '자식 중에 한의사 한명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선산(先山)에 약재도 많이 심어놓았는데…'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죄송스럽더군요. 그래서 다시 대학입시 공부를 시작했지요."

    ―성적이 제대로 나오던가요.

    "그럴 리가요. 진주 제일학원에 무작정 찾아가 '굉장히 공부를 잘했으니 서울대반에 넣어달라'고 떼를 썼어요. 넣어주더군요. 한 달 만에 실력이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400점 만점에 190점을 맞았거든요. 학원에서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스스로 창피하기도 했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거의 운전면허 공부하듯 달달 외워 그해 수능에서 340점을 맞았습니다."

    ―150점을 몇달 만에 올립니까?

    "그래도 한의대 가기에는 턱도 없는 점수였어요. 99학번과 00학번 때 한의대가 가장 셌는데 거의 380점 이상을 맞아야 했거든요."

    ―재수를 했겠군요.

    "재수를 해도 점수가 360점 이상 나오지 않았어요. 원인을 분석해 보니 기초가 부실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PC방을 완전히 접고 교육방송(EBS) 수능강의를 녹화해 공부했습니다. 그해 380점 이상 점수가 나와 대구대 한의학과에 진학했지요."

    경옥고

    바라던 한의대에 진학했지만 원래 이과(理科) 체질이 바뀌지는 않았다. 동양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한의학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도 했고 방황도 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예과 2학년 추석 때 전기(轉機)가 찾아왔다.

    선배들이 집에 들고갈 선물이라며 뭔가를 보자기에 싸고 있었던 것이다. '뭐냐'고 물으니 경옥고라고 했다. "황실보약으로 부모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이원욱도 선배에게 한 단지를 얻었다.

    ―경옥고가 기적을 일으켰습니까.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다음엔 제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한의대생들은 동의보감을 줄줄 외웁니다. 그 동의보감에서 맨 먼저 나오는 게 경옥고 제조법입니다. 그걸 재현한 거죠."

    ―옛 방식대로 만들기가 쉬운가요.

    "경옥고에는 4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인삼, 지황즙, 복령, 꿀이지요. 그걸 용량대로 섞어 사흘 중탕하고 하루 냉각한 뒤 다시 하루를 중탕해야 합니다. 옛 방식은 반드시 뽕나무 장작으로 땔감을 하고 구리 솥을 써야 합니다."

    ―왜 하필 뽕나무 장작에 구리 솥을?

    "옛날에 화력이 일정치 않았잖아요. 열(熱)이 일정하게 가해지도록 한 것이죠."

    ―재료 중 인삼, 꿀은 알겠는데 지황즙과 복령은 뭔가요. 지황은 혹시 숙지황?

    "지황과 숙지황은 다릅니다. 지황을 아홉번 찌면 숙지황이 됩니다. 지황은 열을 빼주지만 숙지황은 음기를 보해줍니다. 복령은 소나무에서 기생하는 버섯균사체의 일종인데 비위(脾胃)를 건강하게 하고 습(濕)을 제거해주지요."

    ―그렇게 옛 방식을 고집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겠지요.

    "옛 방식으론 1주일에 700g짜리 단지를 30개 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기계를 사용하면 1주일에 150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과 1학년 때 기계를 만들었어요."

    ―그럼 효과가 없는 것 아닌가요.

    "화력이 일정하면 되니 사실은 가스불로 해도 상관없습니다. 기계도 알고 보면 간단한 원리입니다. 제가 공학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쉽게 만들었어요."

    ―어떻게 간단하다는 건지….

    "약재와 수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관건인데, 변기(便器)의 원리를 응용하면 쉽지요."

    ―그래서 그해에는 직접 만든 경옥고를 부모님께 선물했습니까.

    "정말 좋아하시더군요. 특히 어머니가. 생전 처음 효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기계 덕분에 나중에 취직도 했고요."

    ―개업을 하지 않았나요.

    "잠시 한의원에서 일하다 '옴니허브'라는 제약회사에 이사(理事)로 입사했습니다. 옴니허브는 한의사들이 만든 회사인데 그 회사 사장님이 세 차례나 절 찾아와 입사를 권유했습니다."

    ―거의 삼고초려(三顧草廬)에 가깝습니다.

    "저는 안 가려 했는데 마지막에 술을 잔뜩 마시게 해서…. 결국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경옥고는 언제 생긴 약인가요.

    "그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칭기즈칸이 매일 휴대했다는 이야기부터 중국 황제들이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동의보감 맨 처음에 나오는 건 확실합니다."

    기인이사

    경옥고를 만들면서부터 그는 전국의 산야(山野)에 묻혀 있는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을 찾아다녔다. 한약에 관련된 비방을 가진 이가 있다는 계룡산·가야산 일대를 헤매고 다닌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같이 비위생적이고 비과학적이며 값 또한 터무니없이 높게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시골 흉가(凶家)에 사는 이는 끓여서 밀랍을 제거해야 할 꿀에서 밀랍도 없애지 않고 쇼맨십에 의존해 돈을 벌고 있었다.

    ―몇명이나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녔나요.

    "한 40명 정도…. 하나같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인삼은 노두(蘆頭), 즉 뿌리에서 싹이 나오는 대가리 부분을 잘라내고 써야 하는데 그것도 지키지 않았고 어떤 이는 제분기도 없어 동네 방앗간을 이용하는가 하면 중탕을 개소주 집에서 하는 이도 있더군요."

    ―그렇게 해서 얼마를 받던가요.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200만~300만원까지 받는 걸 봤습니다. 서울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심하고."

    ―원래 얼마가 정가(定價)인가요.

    "재료비는 12만~13만원 정도고 보통 50만원을 받지요. 한 달 분량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이 약의 원리는 고목(枯木)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고목은 습기가 없어 마르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피곤하고 말라가면서 마른기침을 자주 하게 됩니다. 단, 만병통치는 아닙니다.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음기가 부족하지 않은 사람은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몇년 전 TV에서 가짜 경옥고를 판별하기도 했지요.

    "방송한 날이 탤런트 최진실씨가 사망한 날이었습니다. 엉터리 경옥고를 비싸게 팔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척 보기만 해도 알겠더군요. 경옥고의 '고'는 젤리나 연고형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부터 액체였어요. 학력도 허위였고. 그 방송 이후 그는 구속됐습니다."

    ―그렇다면 황실 3대 보약 가운데 다른 것도 만듭니까.

    "만들지요. 보양(補陽)에 쓰는 공진단은 양기를 급격하게 보충하는 약인데 한알당 5만~10만원씩 합니다. 녹용에 사향이 소량 들어가는데 재료비 자체가 비쌉니다. 청심환은 우황, 즉 소의 담석을 구하기가 힘들지요. 진짜 우황(牛黃)은 소 한 마리를 잡아도 나올까 말까 하거든요."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한약의 종류가 얼마나 될까요.

    "원전(原典)에는 3000가지가 넘습니다. 그 중 제가 복원해낸 것은 100여종쯤 됩니다. 동의보감 외에도 '의방유취'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 번역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옛 방식에 따라 한약을 재현하니 돈방석에 앉았겠습니다.

    "아직도 엄청나게 빚만 지고 있는데요?"

    ―왜요.

    "제가 돈 벌 생각을 했다면 약을 직접 파는 소매 형태를 택했겠지요. 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한의학은 위대하지만 한의사는 곤궁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한의학 자산이 엄청난데 자꾸 다른 쪽에 뺏기기 때문입니다. 전 제가 알아낸 지식을 독식(獨食)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연구소 회원들과 공유하고 최근에는 한의대 재학생들에게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돈 버는 건 나중 문제지요."

    ―연구소라면 지금 이 건물 옆에 있는?

    "제가 운영하는 경옥당 한의원에는 절 포함해 4명의 한의사가 있습니다. 저는 평일에는 연구만 하고 주말이나 공휴일, 명절 때만 진료를 봅니다. 다른 분들이 쉬어야 하니까요."

    ―볼쇼이 발레단, 국립발레단,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행사 때 자주 등장하는 건 돈과 연결된 게 아닌가요.

    "그건 순수한 봉사 차원입니다. 한의사 그러면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약이나 파는 사람들이라고 오해하는 국민들이 많잖아요. 그런 오해를 불식시켜보려는 것뿐입니다."

    희귀약재

    이원욱의 연구소에는 희귀 약재가 즐비하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등을 돌며 희귀 약재를 수입해 직접 맛을 보며 테스트하고 있다. '도지약재'와 '사세비약' 개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도지약재란 약재마다 최적의 기후와 토양조건을 갖춘 지역이 있다는 뜻이며 사세비약이란 제철에 채취한 본초(本草)만이 효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같은 지황도 봄과 가을에 캔 것에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

    ―저기 보이는 동물 뼈 같은 것도 약재인가요.

    "제가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비행 스케줄을 착각해 20일을 표류 비슷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구한 건데 공룡(恐龍)의 뼈지요. 처음엔 지압에 쓸 자갈을 구하러 갔다가 우연히 구한 겁니다. 한의학에서 용골(龍骨)이라고 하는 거지요. 허혈에 특효입니다."

    ―그 나라에 괴상한 파충류가 많은데 혹시 잘못 구입한 건 아닌가요.

    "공룡 발굴 때 자료를 다 확인했습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건데 '루브르박물관에 들어갈 만한 것'이라고 자랑하더군요."

    ―저 가운데 서 있는 괴상한 나무 같은 건 뭔가요.

    "흑단(黑檀)화석입니다. 정말 비싸게 구입했어요. 1300만원 가까이 줬지요. 어느 화석 수집가가 와서 보곤 '2억원 가치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귀한 겁니다. 그런데 사연이 있어요."

    ―뭔가요.

    "저걸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옮기는데 수송비만 30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의원 앞마당에서 이 안으로 옮기는 데만 200만원이 들었어요. 귀하다고 하니 밖에 놔둘 수도 없고 해서."

    ―이 시커먼 숯 같은 것과 둥근 절편 같은 건 뭔가요?

    "이쪽 것은 혈여탄이라고 사람 머리카락을 태운 것입니다. 지혈제로 쓰이지요. 둥근 절편같이 생긴 건 두꺼비 독입니다. 섬수라고도 하는데 외용(外用)해야 합니다. 먹거나 눈에 묻으면 실명(失明)하는 큰일날 약재입니다."

    ―약재를 맛보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겠지요.

    "파두라는 게 있습니다. 꼭 아몬드처럼 생겼는데 그걸 먹고 나흘 동안 설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온몸의 수분을 다 빼내지요. 반하라는 약재는 기도 평활근을 마비시킵니다.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지요. 제 한의원 근처에 일하는 인부가 가래를 삭인답시고 사약(賜藥)의 원료인 천남성을 먹고 온몸이 마비돼 온 적도 있어요."

    ―살렸습니까?

    "그런 증상엔 감초와 녹두로 만든 감두차를 해독제로 써야 합니다. 그분이 나중에 고맙다고 목 자른 오골계를 가져왔어요. 온 직원들이 잘 먹었지요."

    ―보양강장제도 많이 먹어봤겠네요.

    "이게 해구신이라는 건데 술에 담가 먹지요. 소주는 화학주여서 안 되고 안동소주 아니면 막걸리를 증류시켜서 씁니다. 먹어봐도 별 효과 없던데요? 이 해마(海馬)도 정력증강제로 알려졌지만 그랬고요."

    ―아까 불로초(不老草)도 있다고 들었는데.

    "진시황이 먹었다는 불로초를 중국에서는 초종룡이라는 버섯의 일종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엔 와송이라는 게 있는데 기분 탓인지 효과가 있더군요."

    ―경옥고를 직접 만드니 그건 원 없이 먹겠네요.

    "중국집 주방장이 자장면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요. 매일 경옥고를 만들면 인삼 분말을 싫든 좋든 들이마셔야 하거든요. 전 잘 안 먹습니다."

    ―나이에 비해선 약재를 많이 아는 것 같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이런 식이에요. 토당귀와 일당귀라는 게 있는데 토당귀는 보약 기능이 없고 어혈 기능만 하는 데 비해 일당귀는 보약 기능을 합니다. 그런 건 공부하고 직접 체험해봐야 알 수 있지요."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경옥당한의원에서 이 젊은이의 좌충우돌기(記)를 듣는데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쓰는 것 같은 소총과 권총, 가짜 일본도였다. 그는 "도둑이 많이 들어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기르는 개(犬)도 이상했다. 이원욱은 "TV에 '상근이'라고 불린 개와 같은 종(種)"이라며 "저 개는 도둑을 잡는 게 아니라 도둑하고도 금세 친구가 돼 전혀 역할을 못하는 개"라고 했다.

    '한의'는 곧 민족의 역사다. 그런 귀중한 우리 자산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길지 않은 삶에 파란을 겪은 이가 '내가 공부하고 연구한 것을 모두 내놓겠다'고 한다. 볼수록 묘한 젊은이 속에서 한의학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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