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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종합

우린 아직 박제가를 모른다

  •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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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2.24 02:58

    "士族을 장사에 참여시켜라 외국인 기용해 기술 배우자"
    '북학의' 외엔 베일에 싸였던 혁명적 사상과 인간적 면모
    시문집 '정유각집' 첫 완역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린 박제가 초상화. 원본은 추사 김정희의‘세한도’를 소장했던 일본 후지즈카 교수가 가지고 있다가 일제 말기 도쿄
공습 때 소실됐고, 사진만 남았다./돌베개 제공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린 박제가 초상화. 원본은 추사 김정희의‘세한도’를 소장했던 일본 후지즈카 교수가 가지고 있다가 일제 말기 도쿄 공습 때 소실됐고, 사진만 남았다./돌베개 제공
    그 사람은 왜소하지만 굳세고 날카로우며
    재치있는 생각이 풍부하다
    그의 문장에는 찬란하기가 별빛 같고
    조개가 뿜어내는 신기루 같고 용궁의 물과 같은 것이 있다


    청나라 문인 이조원(李調元)이 18세기 후반 대표적 북학파 지식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 1805)의 문집에 쓴 서문이다. 박제가는 네 차례에 걸친 청나라 사행(使行)을 통해 100명이 넘는 중국 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 안목을 갖춘 글로벌 지식인이었다. 그는 조선이 북벌(北伐) 대상으로 지목한 청나라가 오랑캐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과 서양과학으로 무장한 문명국임을 직시했다.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박제가의 주장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조선 지식인들의 낡은 생각을 뒤흔든 혁명적 발상이었다.

    그동안 주저인 《북학의》 이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박제가의 개혁사상과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시문 전집 《정유각집》(貞��閣集·전 3권·돌베개)이 완역돼 나왔다. 고전문학 전공인 정민 한양대 교수가 동료·후학 6명과 함께 5년 넘게 번역에 매달려 나온 성과다. 시 1721수와 산문 123편이 실린 박제가 시문 전집은 196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한 이후 몇 차례 원문과 초역본이 간행됐지만, 완역은 처음이다.

    박제가가 1786년 1월 22일 조정의 조회(朝會)에 참석했다가 쓴 글(《정유각집》 하권 196쪽)은 조선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과의 통상을 제시하는 등 선각자의 모습을 내비친다. 박제가는 중국에 사신을 파견해 '일본과 유구, 안남과 서양 등이 모두 중국의 복건·절강·교주(交州)·광주(廣州)에서 교역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여러 나라처럼 뱃길을 이용해 통상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서양인을 초빙해 천문 관측과 농잠(農蠶)·의약·궁궐과 성곽과 다리를 짓는 법, 구리나 옥을 채굴하고 유리를 구워내는 법, 화포를 설치하는 법, 수레를 통행시키고 배를 건조하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자는 혁명적 제안을 하고 있다. "나라에 놀고먹는 자가 갈수록 불어나는 것은 사족(士族)들이 날로 번성하기 때문"이라면서 "물길과 뭍길을 이용해 장사하고 교역하는 모든 일에 사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제가의 시문집에는 뜻을 함께했던 '백탑파(白塔派)'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글이 다수 포함돼 있다. 박제가가 가장 친하게 교유했던 이는 아홉살 위인 이덕무였다. 같은 서얼 출신에 함께 가난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정조를 보필한 인연 때문이었다. 박제가는 〈장난삼아 왕어양(王漁洋)의 세모회인시(歲暮懷人詩) 60수를 본떠 짓다〉라는 글에서 이덕무에 대해 '청장(靑莊)이 굶어 죽은들 무슨 상관있으리/ 죽는대도 시서(詩書)에선 향기가 날 터인데'라고 읊었다. 박지원에 대해서는 '연암 선생 문필은 사마천과 한유를 아우르니/ 고금을 섭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네'라고 썼고, 홍대용에겐 '만약에 우리 인생 서양 배에 오른다면/ 관내의 제후보다 장사꾼이 더 나으리'라고 함께 장사할 것을 꿈꾸는 뜻도 남겼다. 60명의 친우를 평한 이 시 후반부는 특히 청나라와 일본의 지식인들도 10여명 포함돼 있어, 박제가의 폭넓은 인맥을 보여준다.

    정민 교수는 "박제가 시문 전집에는 전거를 찾기 어렵고, 의미가 모호한 말이 많아 번역 과정에서 막막할 때가 잦았다"면서 "그간 현실개혁가로서의 박제가만 주목해왔으나, 시문 전집 완역으로 박제가의 사유체계와 인간적 면모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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