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20일 미국에 도착한 직후 모습을 감췄다. 24일 참석하는 미 하원감시·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 이외에 어떤 일정도 공표되지 않았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2일 "북미(北美) 도요타의 간부들과 함께 청문회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에 따르면, 도요타는 최근 전문 로비기업 퀸 질스피&어소시에이츠와 민주당 성향의 홍보회사 글로버 파크 그룹의 위기관리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이미 미 의회에서 도요타를 대리해 활동하는 32명의 로비스트와 합류해 청문회를 대비한다.
하지만 도요다 사장의 청문회 출석은 사태를 호전시킬 가능성보다 악화시킬 리스크를 더 크게 안고 있다. 2008년 11월 경영난에 빠진 '빅3(미국 3대 자동차 회사)' 경영진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청문회에 출석했다가 "자가용 비행기를 팔고 일반 비행기로 돌아갈 분은 손들어 보라"는 의원 지적에 망신을 당하고 여론을 악화시켰다. 2000년 9월에는 일본 타이어회사인 브릿지스톤 미 자회사 파이어스톤의 오노 마사토시(小野正敏) 회장은 미 청문회에서 일본 방식으로 사과했다가 "안 져도 될 책임까지 인정했다"는 일본 내 비판에 밀려 1개월 만에 사임한 일도 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기업 문화와 표현의 차이로 일본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요다 사장은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졸업 후, 미 사립대인 밥슨(Babson)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창업가문의 3세 사장. 고교 시절엔 오바마 미 대통령을 배출한 하와이 명문 푸나우(Punahou) 스쿨에 다닌 경험도 있다. 하지만 유럽 인맥에 비해 오히려 미국 인맥이 두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6월 사장 취임 직후 이미 도요타를 퇴임한 미국 전문가 이나바 요시미(稻葉良睍) 사장을 다시 불러들여 북미지역을 맡긴 것도 미국 인맥을 보완하기 위한 인사로 분석됐다. 이번 청문회에도 이나바 사장을 대신 출석시키려고 했다가 미국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급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요다 사장의 개인 스타일도 우려를 낳고 있다. 그는 아버지(쇼이치로 명예회장)로부터 "도요다가(家) 사람이 말하면 그것으로 방향이 결정되니, 듣는 역할을 철저히 하라"는 교육을 줄곧 받았다. 이 때문에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등 샐러리맨 출신의 전임 사장들과 달리, 과묵하고 언변도 능숙하지 않다. 일본 민주당 실력자들과의 관계도 소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경제계를 대표하는 도요타는 전통적으로 자민당과 가까웠다.
이런 도요다 사장이 미 의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요구받은 것은 ▲증언용 문서 제출 ▲성명 낭독 5분 ▲의원 질문에 대한 답변 등 세 가지. 뒤늦은 리콜(회수·무상수리) 조치, 리콜 비용 1억달러 절약 내용을 담은 내부 문서 의혹, 급발진 사고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전자식스로틀제어장치(ETCS) 논란 등 민감하고 전문적인 질문이 쏟아질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4명 사망사고가 일어난 캘리포니아주(州) 샌디에이고 출신 대럴 아이서 의원은 "도요타의 은폐 체질을 추궁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TV 생중계가 예정돼 있어 의원 간의 경쟁적 질타도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도요타 비판이 미국의 사회·정치 문제로 확대됐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도요타 문제를 조사 중인 3개 위원회 의원 125명 가운데 40% 이상이 도요타로부터 과거 10년 동안 100만달러 이상의 정치헌금을 받았다"며 청문회가 싱겁게 끝날 가능성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