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2일. 요즘 자세가 잘 안 되고 스케이팅이 무척 둔하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전체적인 중심을 위로 주지 말고 앞쪽으로 중심을 둬야 한다는 것! 명심하자, 성공하자.'
모태범(21)이 1년 전쯤 쓴 이 일기에는 ☆'기초가 제일 중요하다'며 별표를 단 제목까지 붙어 있었다. 태극기를 두른 채 덩실덩실 춤을 추고 귀에 피어싱까지 한 신세대(新世代) 스타의 이면에는 꼼꼼히 메모까지 하는 치밀한 노력이 깔려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능한 한 매일 훈련 소감과 반성을 일기형태로 정리해 온 모태범이다.
18일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밴쿠버 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이날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스피드 코리아'의 질주는 이어졌다. 모태범은 1분9초12로 '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미국·1분08초94)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2연패를 이룬 최강 데이비스조차 "모태범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막판 스퍼트가 아니었으면 (금메달이) 어려울 뻔했다"고 말했다. 모태범은 이날 한국의 첫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500m)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최초로 2개의 메달을 따낸 첫 한국인 선수라는 기록까지 세우게 됐다.
이날 1000m 은메달은 불과 11개월 만에 0.99초를, 그것도 가장 힘들다는 마지막 400m 구간에서 단축함으로써 가능했던 쾌거였다.
그는 지난해 3월 14일 똑같은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 1000m에서 1분10초11(8위)을 기록했으나, 이날 세계가 보는 앞에서 0.99초를 단축했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세계 정상급 선수 중에 이렇게 단기간에 기록을 줄여나가는 선수는 없다"며 "코너링과 좌우 킥 등 약점을 보완하면 훨씬 좋은 기록도 가능하다"고 했다.
0.18초 차로 금메달을 내준 뒤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던 모태범은 곧 유쾌한 '신세대'로 돌아왔다. 시상대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그의 얼굴은 '은메달도 즐겁다'는 표정이었고, 튀는 인터뷰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다른 한국 선수들처럼) 메달을 따고도 울지 않는 이유를 묻자, "만약에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따면 그때는 진짜 울 거예요. 무릎을 꿇고 울 겁니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어떤 것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이와 길거리를 함께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알아보나 궁금해서요"라고 답했다.
입력 2010.02.19. 02:42
100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