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은 전 세계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대중 브랜드다. 미국, 유럽 등에서도 캐주얼 브랜드 판매 1위를 몇 년째 놓치지 않고 있다. 최상위 소비층을 겨냥한 '블랙', '퍼플' 같은 고급 라벨을 계속해서 내놓는 디자이너 랄프로렌의 후광을 입고, 승승장구하는 폴로가 요즘 우리나라에서 흔들리고 있다. 2009년 12월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빈폴 37%, 폴로 31%(남성복 기준, 전국 백화점 합산)로, 국내 브랜드 빈폴이 폴로를 앞서는 추세다.
◆폴로의 이례적인 세일 행진…왜?
작년 7월 폴로는 이례적인 세일 행사를 했다. '노 세일 브랜드'를 내세우며 콧대 높게 승승장구하던 폴로가 '고객감사초대전'이란 이름으로 30~50% 파격 할인전을 연 것. 업계는 들썩거렸다. "두산이 폴로와 결별하기 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세일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두산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11월에 또다시 전 품목 10% 세일에 나섰고, 올해 2월에도 30% 시즌오프 외 세일에 참가했다. 두산은 지난 1985년 폴로를 국내에 독점 판매하기 시작한 이래 5년마다 판권을 갱신해 왔고, 올해 말 해당 계약분이 만료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폴로가 국내 시장에서 명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생긴 일이라고 설명한다. 한 백화점 MD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폴로의 입지는 명품 매장에 진출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몸을 낮추기엔 몸값이 너무 비싼 브랜드"라며 "최근 폴로 쪽에서 1층 백화점 명품 매장 쪽으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상황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폴로가 세일을 계속하자 고객 반응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회계사 금영훈(36)씨는 "처음 세일할 땐 매장에서 열심히 물건을 골랐지만, 세일을 계속하니까 '폴로가 꺾였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폴로가 이월 상품 세일을 했던 2009년 7월 당시엔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이 남성복 104.7%, 아동복은 146.8%나 됐으나, 8월엔 남성복 8.2%, 아동복 2.9%로 내려갔다. 세일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하는 수입 브랜드는 프랑스의 라코스테. 2009년 매출 신장률이 26.2%로 폴로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 원색 위주의 피케셔츠 등을 꾸준하게 팔아치우며 작년 매출 950억원을 기록,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폴로 카피 이미지 벗었다"…국내 브랜드의 질주
폴로의 왕관이 흔들리는 건 '카피 브랜드' 이미지를 벗고 고급화 전략을 쓰기 시작한 우리나라 브랜드의 역공도 한몫한다.
초기 '짝퉁 폴로'라는 평을 들었던 빈폴은 이제 폴로의 가장 위협적인 상대다. 이미 점유율은 폴로를 앞섰고, 롯데백화점 매출 신장률(2009년)도 빈폴이 29.8%로 폴로(24.1%)보다 앞섰다.
다각화 전략도 특징. 폴로가 규격화된 캐주얼을 고수하는 반면, 빈폴은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며 맨즈·레이디스·키즈·액세서리·골프·진 등 브랜드를 다양하게 만들어냈다. 올해 2월엔 뉴욕·파리에서 각광받는 신진 디자이너 정욱준과 협업, 트렌치코트까지 내놨다.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브랜드를 대표하는 전략 매장)에 힘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를 재단장한 데 이어, 2009년 2월과 6월에도 대구·부산에 연달아 카페가 딸린 5층 규모의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고, 올해 청주에도 연다. 삼성패션연구소 오수민 연구원은 "외국만큼 이름값이 비싼 상표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를 굳히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후발주자 해지스도 대형매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LG패션 측은 명동에 200평이 넘는 해지스 대형매장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간호섭 홍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자국 브랜드가 폴로를 위협하는 구매파워를 보여주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라며 "단순히 품질로 압도했다고 자신하는 걸 넘어, 폴로가 쌓은 국제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뛰어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