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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 여왕 이상화는…] 출국전 달력에 "16일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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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18 03:04

동생 밀어주려 오빠는 선수 접어 공부와 운동 모두 잘하던 '똑순이'
12바늘 꿰맨 상태로 대회 출전도 "기 펴고 살아야지" 전날 가족에 전화

이상화는 경기 전날인 16일 정오(한국시각)부터 오후 4시까지 5번이나 서울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계속 울먹였다고 한다. 아버지 이우근(53)씨, 어머니 김인순(49)씨, 오빠 이상준(24)씨를 바꿔 가며 "떨리고 긴장을 이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오빠 상준씨는 "울기만 하던 상화가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내가 잘할게. 우리 기 펴고 살아야지. 느낌이 좋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오히려 가족을 위로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89년생 신세대(新世代)이면서도 이상화는 '효심'과 '헌신' '가족'으로 통하는 한국 전통 여인 이미지가 강하다고 그를 가르친 교사들은 말했다.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차지한 원동력에는 가족들만 아는 비밀이 있었다.

이상화는 집 달력 2월 16일(현지 경기 시각)에 동그라미를 치고 ‘인생 역전!’이란 글을 적어놨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오빠와 함께 꾼 꿈

이상화는 초등학교 시절 '오빠를 잘 보살펴 주시면 뭐든지 최선을 다할게요. 알겠지요?'라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이상화가 스케이트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오빠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교내 스케이트 대회에서 상장을 탄 오빠를 부러워했던 이상화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경쟁적으로 스케이트 연습을 했다. 오빠도 스케이팅을 잘했지만, 여동생이 더 소질을 보이면서 부모의 고민은 시작됐다. 어머니 김인순씨는 "둘을 함께 시킬 형편은 안 됐어요. 상준이가 결국 중학교에 가면서 꿈을 접었죠. 아들에게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상준씨는 "군에 있을 때 상화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래서 네가 안 하면 나는 뭐가 되냐고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오빠에게 이상화는 늘 미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도 상화가 스케이트를 타면 나도 함께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상준씨는 "동생의 금메달로 제 꿈도 이뤄진 느낌"이라고 했다.

6개월 된 이상화(왼쪽)와 오빠 상준씨.
초등 3년 성적표 '수 5개, 우 4개'

지난해 초 함박눈으로 하얗게 덮인 서울 휘경여중·고 운동장. 방학이던 교정엔 아버지와 딸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34년째 기능직으로 근무하는 이우근씨와 이상화였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흐뭇한 장면이었어요. 국가대표 선수라서 운동하기도 바쁠 테고, 한참 주변의 눈을 의식할 여대생인데…." 휘경여중 이기웅 교감은 "상화는 틈만 나면 모교를 찾아와 아버지를 돕곤 했다"고 전했다.

금메달을 예감한 승자의 아량일까. 16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1차 레이스에서 38초24로 1위에 오른 이상화(왼쪽)가 함께 레이스를 펼친 라이벌 예니 볼프를 다독이고 있다. 볼프는 은메달을 땄다./밴쿠버=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선생님들은 이상화를 머리 좋고 운동도 잘하는 '똑순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은석초등학교 김한기 교장은 "스케이트 선수를 하면서도 6학년 때는 학급회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총명했다"고 말했다. 그의 3학년 성적표를 보면 수 5개, 우 4개 등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휘경여고 3학년 담임이었던 최혜경 교사는 "이해심 많고 유머 감각 좋은 상화가 학교에 오는 날이면 학생들이 둘러싸고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기억했다.

휘경여고 안현옥 교장은 "딸 해외 전지훈련을 보내기 위해 대출까지 받던 아버지와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 딸이 정말 큰일을 이뤘다"고 말했다.

은석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이상화.
부러지고 찢어져도 달린다

초등학교 때부터 9년간 지도했던 전풍성 코치는 "지도자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었던 선수는 상화가 유일하다"고 했다. 스케이트가 너무 좋았던 이상화였기 때문이다. 이상화는 초등학교 때부터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5시에 도시락 두 개를 싸 들고 집을 나섰다. 아무리 피곤해도 '스케이트 타야지' 하고 깨우면 벌떡 일어난 그였다.

이상화가 5학년 겨울 춘천 전지훈련에서 부모님께 보낸 편지.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오른쪽 볼에 11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고도 일회용 반창고 하나 붙이고 돌아왔고, 중학교 때는 종아리를 찔려서 12바늘을 꿰매고도 실밥도 안 뽑고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아프다고 하면 스케이트를 못 타게 할까 봐 말을 안 했던 것 같다"고 부모들은 생각했다.

김관규 국가대표 감독은 "혹독한 훈련을 소화해 외국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체력을 완성한 게 우승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보통 선수들은 140㎏짜리 바벨을 들고 훈련하지만, 상화에게는 170㎏ 바벨로 훈련을 반복시켰는데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상화의 선전에 온 가족이 울고 웃었다. 왼쪽부터 어머니 김인순씨, 아버지 이우근씨, 오빠 상준씨./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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