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70%가 중학생… "그들만의 성인식"

    입력 : 2010.02.18 03:10 | 수정 : 2010.02.18 09:07

    졸업 '알몸 뒤풀이'등 사건… 인성교육 원칙 사라진 탓
    폭력, 학교 벗어나 '광역화' 체벌·상담만으로는 한계

    "학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졸업식 '알몸 뒤풀이' 사건의 가해 학생들을 조사하고 있는 경기도 일산경찰서 관계자는 "모범생은 아니었어도,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 문제학생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사건이 벌어진 중학교는 고양시 일산의 아파트촌 한복판으로, 가해 학생 역시 대부분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학교폭력이 더 이상 일부 폭력 학생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의 일상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하는 학교폭력의 양상 앞에서 처벌과 상담에만 의존해 온 기존의 교육정책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계획화'와 '광역화'

    이번 사건에서 가해 학생들은 미리 뒤풀이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 피해 학생들을 불러냈다. 우발적인 해코지가 아니라 '기획 폭력'이었던 것이다.

    서울 도봉구의 중학교 학생부장은 "과거에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폭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철저하게 가해자가 보복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폭력을 저지른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중학교 학생부 교사는 "휴대전화에 괴롭힘당하는 사진을 넣어서 두고두고 괴롭히는 걸 봤는데 애들이 인터넷에서 못된 것만 배웠다"고 말했다.

    폭력이 한 학교의 범위를 벗어나 지역사회 단위로 광역화(廣域化)되는 양상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같은 동네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고, 심한 경우에는 성인들의 조직폭력 단위를 연상케 할 만큼 폭력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교폭력을 '개인의 사소한 문제'나 '학교 단위의 문제'로 여기는 기존의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중학교에 빈발?

    학교폭력 사건의 주무대가 고등학교가 아닌 중학교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심의건수는 중학교가 6089건으로 전체의 69%를 차지했다. '강요에 의한 괴롭힘'으로 피해를 본 중학생들은 2005~2008년의 4년간 5000명이 넘었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고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시기는 갈등 심리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고교에 진학하면 입시지옥 속으로 빠져들어야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기 전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는 보상심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고려대병원 정신과 한창수 교수는 "최근 졸업식 폭력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중3학생들의 그들만의 성인식"이라고 진단했다.

    예전과 달리 최근의 학교폭력이 결손가정이나 저소득층 학생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새로운 상하 위계질서

    요즘 아이들은 자기주장이 강한데 왜 피해학생들이 폭력에 순응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오히려 상하 위계질서가 강화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대학교수는 "어른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는 학생도 자기 직속 선배에게는 깍듯이 경어를 쓴다"며 "가치관이 잡히지 않아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질서'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학교폭력 유형으로 떠오른 '빵셔틀'(힘센 학생들이 빵을 사오라는 등 심부름을 강요하는 것)도 이 같은 '질서'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입시 위주의 교육 분위기 속에서 인성(人性) 교육의 원칙이 사라진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석영 한국청소년상담원 선임연구원은 "학교에서 공부 말고는 다른 소질이 인정받지 못하게 되자 주목을 받기 위해 심한 행동을 한다"며 "출연자에게 벌칙을 주고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즐기는 TV 예능프로그램의 영향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파티 성대하게 치러주자"

    무턱대고 비난하기보다 아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다. 송인섭 숙명여대 교수(교육심리학)는 "바뀌고 있는 교육환경 속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존재는 바로 학생들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들과 함께 이벤트에 참가해 그 안에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요즘 아이들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교수는 "억압만 할 게 아니라 졸업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주는 등 제도적인 측면으로 보장해 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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