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라이프] 병수발 때 발견한 아버지의 등_손택수

    입력 : 2010.02.12 15:47 | 수정 : 2010.02.14 10:14

    <이 기사는 웰빙라이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왜 그땐 미처 몰랐을까 '아버지의 자리'


    당신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언제나 그래야만 했습니다. 항상 뒤돌아선 곳, 안 보이는 곳에서 우셨습니다. 자식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했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보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야 보고 싶고, 그 분의 말씀은 불가능한 곳에서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지난날 우리에게 아버지는 누구였고, 지금 우리에게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내 인생을 묵묵히 이끌고 지탱해 준 우리들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명사 에세이 '아버지의 추억'

    시인 손택수

    주말마다 한 번씩 목욕탕에 가는 게 나는 죽기보다 싫었다. 어머니와 공범이 되는 것도 싫었고, 앙큼한 누이들에게 매번 꿀밤을 먹이면서 싸우는 것도 싫었다. 속으론 여섯 살, 여섯 살 하고 몇 번이나 되새겼는데 잔뜩 긴장한 목에서 내 의지와는 정반대로 저번처럼 갑자기 여덟 살이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다른 애들처럼 내놓고 뛰어놀지도 못하고 조마조마하게 목욕탕 한 귀퉁이에 웅크려 앉아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온갖 찜부럭이 다 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아버지 탓이야.’ 급기야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따라다닐 수 없을 만큼 커버린 뒤론 하릴없이 혼자서 목욕을 다녀야 했다. 여탕의 악몽에서 해방된 게 나는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런 행복감도 잠시뿐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등을 끙끙거리며 밀 때마다 함께 와서 등을 밀어주는 부자(父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매번 등 밀어줄 사람을 탐색해야 하는 내 처지란 것이 생각하면 참 딱한 것이었다. 그랬다. 아버지는 목욕탕을 가지 않는 이상한 위인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꽤 오랫동안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뭔 놈의 소설 시 나부랭이냐 이놈아, 늬 애비가 시장에서 지게질 하고 번 돈이 어떤 돈인데! 거의 매일 술을 드시고 오셔서 하는 푸념을 나는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긋지긋한 술주정을 대놓고 저주하곤 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건 일종의 직업병이라는 걸, 술힘을 빌리지 않곤 지게를 질 수 없을 만큼 당신이 노쇠했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1998년 경남대 졸업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는 등에 찍힌 지게 자국을 보여주기 싫어 아들과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알코올성 간경화 말기로 아버지가 쓰러져 누웠을 때 나는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보았다. 40년 가까운 지게 짐에 화인처럼 찍힌 자국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자국이었고, 아들에겐 더군다나 어떤 식으로든 물려주고 싶지 않은 상처와 같은 것이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관장을 하고 아버지가 아기 때의 내게 그랬듯 나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았다. 그리곤 아버지를 업고 병원 욕실을 찾았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아버지의 적막한 등짝이 드러났다. 아버지,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이 지게 자국이 제겐 그 무엇보다 귀한 보물과 같아요. 나는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아버지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등에 지고 온 삶의 무게들을 비로소 쓰다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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