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라이프] 아버지를 닮은 딸이 되고 싶습니다_김혜자

    입력 : 2010.02.12 15:29 | 수정 : 2010.02.14 10:11

    <이 기사는 웰빙라이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왜 그땐 미처 몰랐을까 '아버지의 자리'


    당신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아버지는 언제나 그래야만 했습니다. 항상 뒤돌아선 곳, 안 보이는 곳에서 우셨습니다. 자식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했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보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야 보고 싶고, 그 분의 말씀은 불가능한 곳에서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지난날 우리에게 아버지는 누구였고, 지금 우리에게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내 인생을 묵묵히 이끌고 지탱해 준 우리들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명사 에세이 '아버지의 추억'

    탤런트 김혜자

    아버지는 어느 여름날 낮잠을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칠십구세셨으니까 조금씩 몸이 안 좋으셨지만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김 박사는 죽음 복도 타고나셨다고 했지만 나는 식구들과 이별의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가시는 게 무슨 복이란 말인가, 그냥 서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나도 이제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돌아가시기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가 소파에 누우신 채 소변을 보신 적이 있습니다. 헝겊으로 된 소파가 흥건히 젖었습니다. 별로 편찮으시지도 않았는데 애기처럼. 나는 그때 “아버지 창피하게, 아줌마가 뭐라 그러겠어요. 빨리 일어나세요” 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또 애기처럼 웃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멋있는 우리 아버지가 왜 이런 실수를 하셨을까? 어디가 안 좋으신가 걱정보다는 싫고 창피했던 기억이 갑자기 나는군요.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리면서 울었던 생각도 납니다. 양복 속에 감추어져 있던 아버지의 몸은 너무 말라 있었습니다. 살갗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노인이셨습니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1살)과 함께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어머니 모습에 내가 담겨 있다.

    몹쓸 년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끔찍이도 예뻐하셨는데. 삼십칠세에 나를 낳으신 아버지는 “양념딸” “내 양념딸” 하시며 나를 꼬옥, 꼬옥꼭 안아주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십칠세에 결혼하시고, 두 살 위인 어머니와의 사이에 두 딸을 낳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유학 길에 오르셨습니다. 일본으로 해서 미국으로, 그 세월이 십오년입니다. 그래서 제 언니와 제 나이 차가 십오년입니다.

    아버지가 유학 떠나시던 날 층층시하 어른들 계신데 눈 한번 못 맞추고 어머니는 부엌문 앞에 서 계셨답니다. 아버지는 어른들께 전부 인사를 드리고 부엌 쪽으로 와서 고개숙인 어머니에게 “나 물 한 그릇 주시오” 했답니다. 어머니가 부끄럽고 당황해 냉수 한 그릇을 얼른 떠 아버지께 드렸답니다. 그때 얼핏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셨답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유 모를 슬픔에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는 물을 청하는 것으로 사랑의 표현을 청초한 아내에게 한 것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한번 올려다보시는 것으로 아버지의 사랑에 답하고, 그 순간의 사랑 표현으로 십오년을 사셨겠지요. 대갓집 며느리로 아침상을 열여덟 번씩 차려야 하는 고된 시집살이에 밤이 되면 두 딸을 껴안고 파김치가 되어 잠드셨을 거예요.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가 안타까운 이별을 하셨겠지만 청춘을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십오년 동안 어머니만 생각하셨겠어요? 여자친구도 생기고 그러셨을 것 같아요. 아버지 앨범에 보면 세련된 미국 여학생들과 찍은 사진도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시를 많이 읽어주셨어요.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님의 침묵’입니다.

    “혜자야 여기서 임은 누굴까?” 내가 초등학교 때일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대답하면 “응. 그것도 맞아. 그런데 꼭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야. 잃어버린 내 나라일 수도 있고 그래.” 나는 임이 나라란 말인가 생각하면서도 아버지의 이런 설명이 저를 키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동물을 참 좋아하셔서 우리 집엔 거위, 원숭이, 오리, 개, 고양이 모두모두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개를 주워 오셨습니다. 삼발이 보셨어요. 다리 하나가 무릎 근처에서 없어진. 그 개를 깨끗이 목욕시키고 키웠습니다. 애꾸눈 고양이도 있었어요.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살았습니다.

    내가 배우가 되는 것도 아주 좋아하셨지요. “좋은 배우가 돼라. 공부 많이 해서”, 그러셨습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 어느 고아원에 갔을 때 그곳 원장님이 “아버님이 사회부 차관으로 계실 때 우리 고아원을 그렇게 도와주셨는데 이제 따님이 오셨군요” 하며 반기셨습니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입니다” 하시며. 아버지를 닮은 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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