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나온 여자는 티셔츠를 남자친구 손에 쥐여주고 백화점을 돌기 시작해요. 두 바퀴쯤 돌면 남자친구가 탈진 증상과 호흡 곤란을 일으켜요. 이때 여자는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탄산음료를 입에 물려줘요. 사고 싶은 옷이 너무 비싸면 '5바퀴만 더 돌자'고 해요. 남자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남녀탐구생활 쇼핑편)
'남녀탐구생활'은 케이블TV 최고 히트작의 하나다. 찜질방, 인터넷 사용 등 일상적 상황에서 남녀의 서로 다른 심리를 비교한다. '공중목욕탕'에선 정력 키우는 비책에 몰두하는 남자와 체중 감량에만 집중하는 여자를 비교하고, '애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선 시선으로 다른 여자들을 훑어 내려가는 남자와 남자친구 휴대폰을 뒤지는 여자를 비교한다. 이 프로그램 최대 특징 가운데 하나인 건조한 내레이션을 모방하는 성우가 한둘이 아니고, 정가은·정형돈 등 출연 탤런트들은 단숨에 인기인이 됐다.
케이블채널 tvN의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을 만든 김성덕(52) CP(책임프로듀서)는 "남자는 너무 단순해서 짓궂고, 여자는 너무 계산적이라서 사악하다"며 "이런 차이를 MRI(자기공명영상) 찍듯 디테일하게 조각내 고자질하는 게 우리 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물론 아니다. 김 CP가 지난여름 "다큐멘터리 형식의 남녀 비교 코미디를 해보겠다"고 하자 간부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떨떠름했다. "그렇게 해서 재미가 있을까?" "한 번도 못 본 스타일이다"며 부정적 반응만 쏟아졌다. 7월 18일 첫 방송을 앞두고선 "한 주만 방영을 미루자"는 지시까지 떨어졌다.
그는 "미룰 거면 아예 안 하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성우의 내레이션을 입힌 최종 테이프를 내놓으면 '대박'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첫 방송이 나가자 반응이 폭발했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 달 만에 최고의 화제 프로그램이 됐다.
송창의 PD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1996)', '세친구(1999)'팀에서 일했던 그에게 남녀 풍자 개그는 늘 관심사이자 장기 종목이었다. 여기에 성우 목소리를 더빙하는 새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코미디'를 완성했다. 남자편―여자편으로 코너를 나눈 것도 "남녀 차이를 더 적나라하게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다큐멘터리형 코미디를 만들자니 성우 목소리가 큰 걸림돌이 됐다. 평범하면 재미없고, 튀면 다른 코미디와 다를 게 없고…. 그때 생각난 것이 은행 폰뱅킹 때 흘러나오는 '입.금.하.신.금.액.은.…'이란 기계적 목소리. 당장 성우에게 이런 목소리를 주문했다. 감정이 들어갈까 봐 아예 녹화 영상도 보여주지 않았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이 내레이션은 남녀탐구생활의 최대 히트 상품이 됐다.
남녀탐구생활은 도처에 널린 일상이 아이템이다. 그는 아이템이 고갈되면 맥주 한 캔 들고 집 근처 홍대 공터에 앉아 행인들 모습을 관찰한다. 이렇게 일주일간 축적한 메모만 A4용지 70~80장 분량. 하루 8~10시간씩 이어지는 릴레이 기획회의의 기초 아이디어들이다.
그는 "작가들과 PD들 아이디어가 워낙 많아, 못 웃기는 일은 있어도 소재가 고갈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남녀 차이를 풍자한 또 다른 형식의 새 케이블 시트콤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