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중국이 시중에 풀린 돈줄 조이기에 나선 데 이어 미국도 10일 단계적 '출구전략(지나치게 풀린 자금 회수)' 시나리오를 내놨다. 좀처럼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서지 못하는 유럽과 디플레이션(물가하락) 늪에 빠진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전 세계 주요국들의 정책 방향이 경기부양에서 재정·금리 정책 정상화 쪽으로 서서히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미국 출구전략 시나리오 제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하 연준) 의장은 10일(현지시각)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 자료에서 "지속적인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초저금리 통화정책 기조가 여전히 필요하지만, 출구전략을 제때 시행할 준비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작한 초저금리 정책을 일단 유지하겠지만, 때가 되면 금리 인상 등의 출구전략을 시행하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버냉키 의장은 출구전략을 시행하겠다는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비록 구체적인 시행시기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출구전략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미국은 최근 높은 물가 상승과 경제성장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출구전략 필요성이 제기됐다.
버냉키 의장은 '선(先) 유동성 회수-후(後) 기준금리 인상' 구상을 밝혔다. 특히 시중 자금 흡수를 위해 '재할인율'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재할인율은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자금을 빌려줄 때 적용되는 금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재할인율을 0.5%까지 낮췄다. 재할인율을 인상하면 은행들이 자금 빌리기가 어려워지게 돼 시중에서 자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고민 커지는 중국
올 들어 가장 먼저 돈줄 조이기에 나섰던 중국은 고민에 빠졌다. 강력한 긴축정책에도 여전히 지나치게 풀린 돈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추가 긴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1일 중국 인민은행은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3%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예상치(3.5%)를 웃도는 수준이다. 부동산 가격도 심상치 않다. 1월 70개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은 전년보다 9.5% 상승, 2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중국은 1월초부터 ▲국채발행금리 인상 ▲지급준비율 인상 ▲은행 신규대출 억제지시 등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펼쳐왔지만, 단기적인 정책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기 위한 추가 지준율 인상이나 정책금리 인상 등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찍 출구전략 나선 국가는 속도조절도
출구전략을 일찍 시행했던 일부 국가들은 이미 긴축의 속도를 조절하는 2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이 예상보다 빨리 긴축정책으로 전환하자 다시 한 번 세계 경기 위축 우려가 제기됐고, 이미 기준금리 인상을 해오던 국가들은 오히려 동결에 나서고 있다.
인도는 지난달 말 지급준비율을 0.75% 포인트 인상했지만, 기준금리는 동결했다. 또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호주와 노르웨이는 이달 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호주와 함께 주요 원자재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도 지난 4일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렸다.
메리츠증권 심재엽 연구원은 "유럽 지역 재정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의 긴축전환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증권 김재홍 연구원은 "실제 미국이 출구전략을 실행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번 인상하기 시작하면 빠르게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출구전략(Exit strategy)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경제상황에서 빠져나갈 때 쓰는 전략을 가리킨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고민하는 출구전략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과도하게 풀린 자금을 경기 회복시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회수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은행의 지급준비금 조절 등의 방법이다.
입력 2010.02.1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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