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광화문과 日 쇼소인(正倉院)에서 본 '민족 문화'

  •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

    입력 : 2010.02.11 05:59

    민족문화 이데올로기가 한·일 시민사회 지배하면
    양국 국민 정치적 화해는 불 앞의 얼음일 뿐…
    동아시아 공동체는 더더욱 신기루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서양사
    '한일병합' 100주년이라, 현해탄을 오가는 말들이 많다. 아사히신문은 1월 27일부터 3일 연속 '광화문'에 대한 기사를 연재했다. 연재 첫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광화문이 함께 잡힌 긴 앵글의 사진이 기사와 함께 1면 상단에 꽤 크게 실렸다.

    기사는 '미래를 향해 복원'되는 '수난의 문' 광화문의 재건(再建)이 '민족정기'와 '극일(克日)'의 상징이라고 서울의 분위기를 전한다. 제3공화국 당시인 1968년 복원한 광화문은 콘크리트로 급조한 것일뿐더러, 각도도 약간 비틀어져 제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야 제대로 복원되는 셈이다.

    그런데 광화문에 얽힌 민족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제(日帝)가 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광화문을 철거하려 할 때, 반대 여론에 불을 지핀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이었다. 이 민속학자는 아무런 창의성도 없는 서양식 건물이 조선의 성지(聖地)를 침범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이 내용이 당시 신문에 소개되면서 광화문 철거 반대운동에 힘이 실렸다. 덕분인지 광화문은 파괴를 면했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에 징발된 백성들이나 궐 앞에 엎드려 상소(上疏)하던 유림(儒林)에게 광화문은 그저 몰락해가는 왕가의 대문이었을 것이다. 식민지로 전락한 무능하고 타락한 왕가의 대문이 민족적 상징이 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 총독부의 철거 계획 덕분이 아닐까? 어쨌든 광화문은 죽지 않고 경복궁의 동쪽으로 옮겨졌다.

    복원공사를 감수하는 한국 최초의 고건축 권위자는 1970년 일본의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수학했다. 국내에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싫어도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귀국 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역임한 그는 북한의 초대로 개성의 옛 사찰 복원 등에도 관여했다. 또 1927년 옮겨 지을 당시 일본인 기사가 남긴 6장의 도면이 없었다면, 오늘날 광화문의 복원도 막연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민족문화'는 이처럼 일제와의 길항(拮抗) 관계 속에서 형성되기도 했다. 한반도만의 특성이 아니라 세계사적 현상이다.

    지난 11월 벼르고 별러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린 '61회 쇼소인(正倉院·일본 왕실의 유물 창고)전'을 보러 갔다. 인파(人波)에 치이면서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자단나무 비파나 정밀하면서도 우아한 바둑판을 비롯해 갖가지 칠공예, 금속공예품 등에 넋을 뺏겼다. 고묘 황후가 서기 756년에 기증한 물건들이라니, 그 아스라한 세월을 이겨낸 이 유품들이 대견했다.

    그런데 보물들은 당나라와 서역, 페르시아에서 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도 있다. 요샛말로 국산품보다는 수입품이 훨씬 많다. 수상해서 찾아보니, 1000개가 넘는 일본의 국보 중에도 '외제'가 꽤 많다. 도자기의 경우 고려 것도 있지만 남송 제품이 압도적이고, 불교 관련 조각이나 그림 중에는 당나라 것이 많다.

    그 보물들을 만들고 운송하고 소비하고 감상한 사람들이 모두 여러 나라에 걸쳐 있으니 사실은 인류의 유산인 셈이다. 그런데 국보로 등재되는 순간, 이 국적을 초월한 문화유산은 일본의 민족문화로 둔갑하는 '마술'이 일어난다. 박물관이 민족문화의 산실(産室)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박물관뿐만이 아니다. 순(純) 일본 누에 실로 쇼소인의 비단을 복원했다며 대견해하는 일본 신문의 논조나 '우리들의 쇼소인'이라는 초·중학생 대상 글짓기 대회는 왕가(王家)가 수입한 그 외제 명품들을 천 수백 년의 세월을 넘은 민족문화로 포장한다. 대신 남송과 당, 고려의 장인들이나 페르시아의 상인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민족문화는 이처럼 타자(他者)를 배제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우애(友愛)를 강조하는 하토야마 정권의 등장은 분명 정치적으로 한·일 간의 민족적 갈등이나 대립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국경 너머 이웃을 타자화하는 민족문화의 이데올로기가 양국의 시민사회를 지배하는 한, 정치적 화해는 불 앞의 얼음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더더욱 신기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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