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아바타'엔 벌벌 떨고 '디워'는 조롱

    입력 : 2010.02.10 23:02

    박정훈 사회정책부장

    '아바타'의 공습을 맞은 한국 영화계의 반응은 '충격과 공포'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놀라운 테크놀로지와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당한 나머지, 충무로 영화가는 "우리는 도저히 못 따라간다"며 패닉 증세마저 보이고 있다.

    '디워'의 심형래 감독(영구아트 대표)도 아바타 쇼크에 시달리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아바타를 보고 "기가 질렸다"고 했다. 심 감독이 충격받은 것은 영화 자체가 아니었다. 영화 한 편에 13년을 투자하고 5억달러(약 5800억원)를 퍼부을 수 있는 할리우드의 '무한(無限) 물량' 인프라에 숨이 막힐 만큼 압도당했다는 것이다.

    아바타 충격을 보며 그를 떠올린 까닭이 있었다. 심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할리우드의 '성공 방정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이다. 그는 2년 전 SF영화 디워를 들고 미국이라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 2277개 개봉관에서 필름을 돌렸다. 큰 흥행 실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한때 미국 박스오피스 4위까지 올라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금쯤이면 다음 작품 찍으면서 할리우드 따라잡을 궁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심 감독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빗나갔다. 모처럼 만난 심 감독은 심신(心身)이 온통 지쳐 보였고, 얼굴엔 피로감이 역력했다. 그는 "새 작품 구상은 끝났지만 투자받기가 너무 어렵다"며 내내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심 감독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SF영화가 가능한지 회의(懷疑)가 든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스튜디오 하나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할리우드와 '맞짱' 뜨려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영화계가 온통 '안티 심형래'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는 "나를 씹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도 했다.

    그가 피곤한 처지가 된 것은 스스로의 책임도 있다. 만약 디워가 대성공을 거두었다면 그를 둘러싼 논란은 잠재워졌을 것이다. 디워는 미국·중국 등에서 상당한 흥행 수입을 올렸지만 제작비(300여억원)엔 못 미쳐 적자에 그쳤다. 스토리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혹평(酷評)도 받았다.

    하지만 용이 꿈틀거리는 컴퓨터그래픽(CG)만큼은 대단했다. CG는 21세기 영화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할리우드가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CG 기술력을 그와 '영구아트'의 50여명 스태프가 독학(獨學)으로 확보한 것이다.

    심 감독은 '할리우드 모델'을 시도했던 유일한 한국 영화인이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영화를 제작했고, 할리우드의 주특기인 SF 분야에 승부를 걸었다. 평론가들이 아무리 평가절하해도 미국 전역 개봉의 기록을 지닌 것은 지금껏 디워뿐이다. '괴물'이며 '해운대'도 국내에서나 펄펄 날았지, 어디 해외엔 나갈 생각조차 했는가.

    심 감독의 감독 자질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지닌 노하우는 참 아깝다. 우리 영화계는 할리우드를 경험해 본 그의 노하우를 왜 활용하지 못할까. 아바타의 공습(空襲)에 벌벌 떨면서, 그나마 할리우드와 맞붙어 보았던 심 감독의 경험을 왜 죽이려 할까.

    심 감독은 무엇보다 "안에서 총질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더라"고 했다. 밖에 나가 한국 영화의 살 길을 찾으려 하는데, 안방만 지키면서 뒤에서 총을 쏴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디워는 반미(反美) 코드에 젖은 그룹으로부터 "쓰레기 같은 영화"라는 저주를 받았고, 평론가 진중권씨는 작심한 듯 '심형래 스토커'로 활약 중이다.

    틈만 나면 심 감독에게 조롱을 퍼붓는 진중권씨는 아바타 쇼크를 이겨낼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 한국 영화도 세계 시장에 나가 돈 좀 벌자는데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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