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납치·살해 판치는 과테말라에 가다] 한국인 1만명이 과테말라 수출 10% 담당

    입력 : 2010.02.09 02:42 | 수정 : 2010.02.09 07:25

    공장 짓고, 식당 열고… 범죄 공포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
    美·中·日人은 못버텨 한글학교 週1회 운영 교장도 7년 전 총상… 교사 대부분 자원봉사

    "500년 전 스페인 군대 이후 과테말라에 가장 많이 들어온 외국인이 한국 사람이에요."(과테말라 '천사의 집' 홍승의 신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도 한국인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 수도인 과테말라시티에서는 인구 10만명당 108건의 살인사건(2006년 기준)이 발생해 남미 최대의 폭력조직의 소굴로 악명이 높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10만명당 37건)의 약 3배에 달한다. 이런 곳에 한인들은 공장을 짓고, 옷 장사를 하고, 식당을 연다. 한인회관을 마련하기 전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먼저 만들었고, 과테말라 사람들을 위한 고아원도 짓기 시작했다.

    '돈만 안다'는 현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한국인이 없으면 과테말라 경제는 붕괴한다. 1만명의 한국인이 인구 1300만의 과테말라 수출의 10% 이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곳의 미국·중국·일본인 등은 수백명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도 대부분 못 견디고 떠나간다"며 "끈질긴 한국인들만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월급 300달러를 받는 홍승의 신부(맨 왼쪽)가 100만달러짜리 사회복지시설인 ‘천사의 집’을 지었다. 과테말라에는 납치와 살인의 공포보다 더 큰 희망이 있다./과테말라시티=조의준 특파원
    살해당한 친구 사진 보며 재기 다짐=지난 5일(현지시각) 과테말라 시티의 봉제회사 'OK 모다스'. 김문주(52) 사장은 "지금껏 두 번 망하고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라며 웃었다.

    사무실에 놓인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작년 2월에 살해당한 친구예요. 먼 타국에 와서 사귄 몇 안 되는 친구였는데…. 너무 불쌍해서 일주일 동안 울기만 했죠." 사진 속 친구는 그와 함께 골프를 치고 있었다.

    재단사로 일을 시작한 그는 30년 넘게 봉제업계에서 일했다. 김씨는 "1992년 과테말라에 공장장으로 와서 1997년 처음으로 독립해서 봉제공장을 차렸다"고 했다.

    한 차례 망하고 지난 2000년 두 번째 사업을 시작할 때는 살해당한 친구와 동업을 했다. "둘 다 쫄딱 망했었죠. 집에 전기요금을 못 낼 정도였으니까요. 친구가 못다 한 꿈까지 제가 이룰 거예요."

    두번 망한 후 세번째 공장을 세운 교민 의류업체 ‘OK 모다스’의 김문주 사장(가운데)과 직원들./과테말라시티=조의준 특파원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현지 회사에 들어가 공장장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2008년 23만달러를 밑천으로 지금의 공장을 세웠다. "직원이 400명이니깐 봉제공장치고 큰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우리 공장은 놀지 않아 큰 위안이 됩니다."

    과테말라의 봉제업은 생산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이곳 사람들이 마야족의 후예로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봉제업체 관계자들은 동남아시아에서 2개 공장에서 할 일을 이곳에서는 한 공장에서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김씨는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어머니에게 칭찬받는 아들이 되고 싶다"며 "꼭 성공해서 '우리 엄마'에게 대견한 아들이 되겠다"고 했다.

    총도 막지 못한 한국인의 교육열=지난 6일 과테말라 한글학교에서 만난 이은덕(55) 교장은 "나도 7년 전에 얼굴과 손에 총을 맞았다"고 했다. 그의 왼쪽 광대뼈는 40개의 나사와 티타늄으로 만들어졌다.

    이 교장은 "그래도 이곳에 와서 봉사하는 이유는 '얼마나 안전하냐'보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더 가치 있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과테말라 한글학교의 학생들과 이들을 가르치는 이은덕 교장(뒷줄 왼쪽 끝)과 장유복 교사(오른쪽 끝)./과테말라시티=조의준 특파원

    매주 토요일에 운영되는 이곳 한글학교에서는 국어·음악을 중심으로 한국의 교육과정을 배운다. 본국 지원은 연간 1만달러와 교재가 전부. 아이들이 내는 학기당 300달러의 수업료가 주된 수입원이다.

    25명의 선생님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고, 총 170여명의 아이들이 매주 학교로 온다. 가정집을 개조한 학교이고 장소가 좁아 창고와 옥상에서 공부하지만 아이들은 한글책을 놓지 않는다.

    이정옥(여·39) 교사는 "아무리 치안상황이 악화되고 교실이 좁아도 출석률이 95%를 넘는다"며 "오늘 아침에는 3살짜리 아이가 팔이 부러졌는데도 깁스를 하고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개나리반'의 백승민(5)군에게 "왜 남들 쉬는 토요일에 학교에 다니냐"라고 묻자 당연한 듯 "엄마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했다.

    개나리반의 장유복(여·49) 교사는 "아이들이 스페인어를 주로 쓰다 보니 '우리 엄마'가 아니라 '내꺼 엄마'라고 쓸 때도 있다"며 "그래도 삐뚤빼뚤 그림일기를 써올 때면 너무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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