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해방공간 지도자들, 이념 떠나 '복간 축하' 메시지

    입력 : 2010.02.09 02:51

    김구 "有志者 事竟成" 여운형 "新국가에 반석되길"

    강제폐간 때까지 소설 '삼국지'를 연재한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 타계할 때까지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논설을 쓴 편집고문 호암(湖岩) 문일평(1888~1939),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기자 일성(一星) 이관용(李灌鎔·1891~1933)….

    수많은 '조선일보 사람들'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타계해 조선일보 복간의 뜨거운 감격을 함께하지 못했다. 조선일보에 인기소설 '임꺽정'을 장기 연재했던 벽초(碧初) 홍명희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 조선일보를 함께 만들던 동지들의 부재(不在)를 안타까워하며 이들과 함께 감격을 나누지 못하는 심정을 조선일보 복간호에 절절하게 술회했다.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어서 다시 살아나오는 조선일보에 축사를 부치려고 눈에 익은 조선일보 마아크 박힌 원고지를 앞에 놓고 앉으니 전날 조선일보에 투고하라고 조르던 호암(문일평), 일성(이관용), 소설란을 같이 채우던 만해(한용운) 이런 죽은 친구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생각이 감상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1945년 11월 23일자)

    해방 직후의 정치지도자들은 좌우의 이념 구분을 떠나 한결같이 조선일보의 복간을 축하하고 환영했다. 이승만(李承晩)은 "조선일보가 왜적(倭敵)의 압박 밑에서도 민족의 개명(開明)과 국권(國權)의 회복(恢復)을 위하야 분투항전(奮鬪抗戰)한지 다년(多年)이었는데 왜적의 시기와 탄압으로 말미암아 폐간하게 이름을 우리가 피가 끓게 통념(痛念)히 여겨온 바"라며 "금일 우리의 위급한 이 시기에 조선일보가 다시 부활하여 출세(出世)됨을 우리는 한없이 기뻐하며 환영한다"고 축하했다.

    11월 23일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有志者 事竟成(유지자 사경성·뜻이 있으면 끝내 성취할 수 있다)'이라는 조선일보 복간 축하 휘호를 썼다. 조선일보 제6대 사장 출신으로 국민당을 창당한 안재홍(安在鴻)은 "(조선일보가)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으로 절식(絶息·숨이 끊어짐) 되었었고, 이제 조선민족에게 약속된 해방과 함께 또다시 그 보도와 비판 및 선양의 기관으로서 신(新)출발하게 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축하했다.

    좌익 진영도 조선일보의 복간을 환영했다. 조선공산당 총무부장 겸 재정부장 이관술(李觀述)은 당을 대표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철쇄(鐵鎖·쇠사슬)에 억매이었던 조선일보가 다시 나오게 된 것은 귀보(貴報)의 긴 역사를 잘 아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조선일보가 전통 있는 그 본령(本領)을 충분히 발휘할 것으로 크게 기대하여 마지않는다"고 했다.

    인민당 당수 여운형(呂運亨)은 "(조선일보가) 과거의 빛나던 그 민족문화 사상(史上)에 남긴 공적과 역할을 다시 살려서 바야흐로 닥쳐오는 신국가 건설 도정(途程)의 훌륭한 반석이 되어주기를 바라마지않는다"고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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