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김은비' 사건보다 더 어이없는 댓글들

    입력 : 2010.02.05 23:07

    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조선닷컴은 4일 경주에서 지난달 초 '실종'됐다는 한 여고생 사건에 대한 후속 보도를 했다. 17세로 알려진 '김은비'라는 학생이 사실은 21세의 이(李)모 여성이고, 가출해서 신분을 속이고 제 발로 보육원에 들어가 고교 공부를 다시 하다가 4년이 지나 부모가 있는 서울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이 기사에 달린 조선닷컴의 백자평(百字評) 댓글들에는 이 여성을 향한 욕설에 가까운 비난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 학생의 안전을 염려했던 만큼 비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도를 넘었다. 다른 주요 웹사이트에도 많이 달린 댓글 역시 신문에 옮기기에 부적절한 수준이다. 이런 저급한 댓글의 특징은 무슨 일이든지 아무 논리도 없이 비난의 화살을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 여성에 대한 비난이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로 연결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날 어느 여가수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전직(前職) 대통령이 자신의 팬(fan)이었다고 밝혔다. 그 기사에 대한 댓글엔 그 가수를 인격적으로 난도질하는 내용이 절반을 넘었다. 그 가수가 그 전직 대통령을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이 그 가수를 좋아했다는 것인데도 그 가수의 '개념 없음'이 죄목(罪目)이 됐다.

    조선닷컴은 댓글이 비방·모욕·음란·허위 사실 유포·광고이냐는 등의 기준에 따라 댓글의 5~10%는 삭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백자평이 '깨끗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저질(低質) 댓글의 범람은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스 웹사이트는 아예 댓글(comments)을 엄격한 잣대로 선별(選別)해 게재한다. 다른 댓글 작성자를 비방하는 글은 물론, 논점을 벗어나도 탈락이다. 지나치게 흥분한 글도 거부된다.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자동 검열(screening)하는 소프트웨어가 없다 보니 웹사이트 운영자가 일일이 댓글을 읽는다. 그래서 하루에 댓글이 허용된 기사는 5~6건뿐이다.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지난달 25~29일은 '욕하지 않는 주간(No Name-calling Week)'이었다.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가 후원해 2004년부터 실시하는 이 캠페인은 온·오프상의 공동체에서 인종, 성적(性的) 취향, 생각 등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욕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해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일주일간 캠페인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작년 9월 포털 사이트 네이트와 싸이월드의 이른바 '악플러' 평균 연령은 25.7세였다. 2006년 한 진보적인 여성운동가의 아들이 사고로 사망했을 때 악플을 단 이들은 검찰 조사 결과 대부분 직장이 있는 30~50대 남성이었다.

    경주 '실종 여고생' 비난 백자평은 100여건에 달했다. 그 속에는 5일 이른 아침에 자신을 의대생이라고 밝힌 사람이 올린 다섯 건도 포함돼 있었다. 2008년에 '은비 학생'을 자원(自願)해서 가르쳤다는 그는 '은비 학생은 불평 없이 엄청난 숙제를 다하고, 진짜 의사가 되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엄청 올랐던 학생이었다. 그의 선택이 혹시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은 아니었을까…'라고 썼다. 한 개인이 수준 이하의 댓글에 상처받지 않고 견디는 방법은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인터넷 욕설과 비방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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