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벗기는 사회] [下] 공중에 뜬 심의 체계

    입력 : 2010.01.29 03:12

    영등委·방통委·청소년委 모두 "뮤비 심의가 우리 일이었나?"
    공연 모니터 기관도 없어, 전담 직원 태부족… 비디오 전담이 고작 3명

    지난 1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케이블 채널 ETN '뮤직박스'를 통해 방송된 2NE1 멤버 산다라 박의 솔로곡 '키스(Kiss)' 뮤직비디오에 대해 '수정' 권고 조치를 내렸다. "반복적인 음주, 돈을 찢는 장면 등이 어린이와 청소년이 시청하기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실소가 나왔다. 이보다 적나라한 장면을 다룬 충격적 뮤직비디오가 곳곳에 차고 넘치는데, '애교' 수준에 불과한 작품에 제재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가요계가 극단적 선정성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심의 체계의 허점에 있다. 특히 인터넷에 숱하게 떠도는 성적(性的) 이미지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어떤 심의기구도 자기 영역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비디오·DVD 등에 대해 관람등급을 매기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요즘 유포되는 인터넷 뮤직비디오는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되기 때문에 심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된 영상물만이 심의대상이라는 것이다. 영등위 관계자는 "게다가 뮤직비디오는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을 통해 나갈 경우 방송사를 통해 자체 심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영등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각 기획사는 선정적 장면을 최소화한 방송용 뮤직비디오와 최대한 자극적으로 편집한 인터넷용 뮤직비디오 등 두 가지 이상의 버전을 들고 매체별로 다른 방식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최근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된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수정 방송을 권고받은 소녀그룹 2NE1 멤버 산다라 박의‘키스’뮤직 비디오. 그러나 인터넷에는 이보다 훨씬 선정적인 뮤직 비디오가 범람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이 위원회는 방송위원회 시절과 달리 인터넷상의 유해 콘텐츠에 대한 심의 권한을 가졌지만, 지난 2008년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인터넷 뮤직비디오를 심의하지 않았다. 지난 2년 여간 2만7000여건의 인터넷 문제 콘텐츠에 대해 시정 요구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 모델들 사진에 대해서는 시정 요구를 하면서 정작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일부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뮤직비디오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보는 것이라 생각해 영등위 소관이라 생각했다"며 "최근에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심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선정적·폭력적 가사를 담은 음악에 대한 심의를 통해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있는 청소년보호위원회 또한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영등위 소관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 기관들이 이토록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부족한 인력과도 관련이 있다. 영등위 전체 직원 숫자는 32명. 그중에서 비디오·DVD 등을 중점 심의하는 비디오물등급분류소위원회 전담 직원은 3명에 불과하다. 방통심의위에서는 통신심의소위원회가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데 위원 숫자는 3명뿐이다.

    숙명여대 박천일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한 가지 콘텐츠가 워낙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중들에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매체를 중심으로 심의를 하는 과거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며 "보강된 인력을 바탕으로 콘텐츠 위주의 심의가 진행돼야 하며 대중의 말초적 관심을 끌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제작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선정적 공연을 모니터링할 기관도 없다. 작년 말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은 단독 콘서트 무대에서 침대에 묶인 한 여성을 상대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논란을 빚었다. 당시 주최측은 이 콘서트를 '12세 이상 관람가'라고 알렸지만 이는 자의적 결정이었다. 국내에는 국내 공연과 관련해 관람 등급을 정하는 정부기관이나 민간기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영덕 수석 연구원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적 심의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선정성 경쟁으로 치닫는 요즘 가요계를 보면 업계가 자율적 심의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당국에서 환경 조성에 나설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키워드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