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벗기는 사회] [上] 어른은 몰라… 청소년 파고든 음란 '뮤비(뮤직 비디오)'

    입력 : 2010.01.27 03:57 | 수정 : 2010.01.27 10:50

    선정적 뮤직 비디오, 인터넷·휴대폰 등 통해 침투
    시청 등급·제한 없는 인터넷
    기획사의 '벗기기경쟁' 무대로
    性폭력 가해 청소년 40% "인터넷·TV 볼 때 性충동"

    미성년 가수가… 작년 12월 29일 SBS ‘가요대전’에서 맨몸을 드러내는 도발적 의상으로 논란을 빚었던 소녀그룹 2NE1의 멤버 씨엘. 그는 당시 18세였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아빠 내 춤 어때?"

    서울 서초동에 사는 회사원 김영환(38·가명)씨는 지난 20일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8세 딸이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뜻 모를 '주문' 같은 노래를 부르며 두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번쩍 들어 올린 뒤 윗옷을 벗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다시 상체를 바닥에 대고 쭉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누우며 뒹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춤"이라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했더니 수십개 뮤직비디오가 화면에 올라왔다. '클릭'해 보니 젊은 남녀가 뒤엉켜 옷을 벗기며 성행위를 벌이는 듯한 장면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춤추던 여성들이 한 여성의 온몸을 위아래로 쓰다듬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딸이 따라 하던 문제의 그 안무가 나왔다. 여자끼리 입맞추려는 모습도 나왔다. 김씨는 "어떻게 애가 이런 걸 보고, 춤을 따라 하는 걸 그냥 두느냐"며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본지가 서울 노량진 비상 에듀 학원과 미아동 비상 아이비츠 학원에 다니는 중고생 151명(고교생 86명, 중학생 65명)에게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아브라카다브라' 뮤직 비디오를 본 학생은 109명(72%)에 달했다. 성 관계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가득한 박진영의 '노 러브 노 모어(No Love No More)', 아이비의 '터치 미(Touch Me)' 뮤직 비디오를 본 학생도 각각 42명, 35명이었다. '보핍 보핍' 뮤직비디오의 경우 '19세 이하 버전'과 '19세 이상 버전'으로 유포되고 있는데 각각 69명, 17명의 학생이 이를 감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뮤직 비디오를 어떤 경로로 감상하는가"(복수 응답 허용)라는 질문에는 72%(109명)의 응답자가 인터넷을 선택했고, PMP·MP4플레이어·아이팟(18명), 휴대폰(10명)을 선택한 학생도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1차로 본 뒤, 다시 휴대용 동영상 플레이어를 통해 반복 감상하는 패턴으로 뮤직비디오가 청소년들 사이에 파고들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요즘 뮤직 비디오의 평균 제작비는 1000만~2000만원선. 7~8년 전만 해도 수억원의 돈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 뮤직 비디오가 많이 제작됐지만 가요계 불황이 이어지면서 투자가 급감했다. 투자비가 줄어드니 '저예산 에로 영화'의 공식을 걷게 된 것이다.

    뮤직 비디오는 노래를 홍보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돈을 내고 '다운로드'받는 경우는 없다. 신곡 발표와 함께 무차별적으로 인터넷과 전파를 통해 뿌린 뒤, 자극적 장면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돼 '○○ 키쓰신', '○○ 베드신' 같은 제목으로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라도 오르면 기획사 입장에서는 '대박'으로 통한다.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한 간부는 "몇년 전 요즘 같은 수위의 뮤직 비디오가 방송에 나갔으면 시청자들이 난리를 쳤을 것"이라며 "너무 선정적이라서 기획사측에 뮤직비디오 재편집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 감독 서현승씨는 "소녀 그룹들이 음악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결국 선정적인 비주얼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인터넷에는 시청 등급도 없고 아무런 제한도 없으니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선정적인 콘텐츠의 일상적 확산이 청소년들을 성적으로 자극해 충동적 범죄자로 내몰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의대 신의진 정신과 교수 연구팀이 2008년 성폭력 가해자 청소년 155명을 대상으로 '성폭력 동기'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여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40%의 응답자가 "인터넷과 TV를 볼 때 성충동을 느낀다"고 밝혔으며 23%의 응답자는 자신의 성폭력 발생 주요인으로 '선정적인 동영상과 채팅'을 꼽았다. "청소년 성 문제에 관해 1차적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두 번째로 많은 26%의 응답자가 "선정적인 대중매체"라고 응답했다.

    시민단체 밝은 청소년 지원센터 지정순 미디어 전문 위원은 "일부 가수들의 도를 넘어선 선정적 뮤직 비디오는 청소년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콘텐츠인데 어른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서 문제가 심각하다"며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적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것이 성범죄를 합리화하는 요인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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