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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umn

[아침논단] '좀 더 잘 실패해보는' 새해를

  • 이민진 재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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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0.01.25 22:29 | 수정 : 2010.01.25 23:10

    한국의 성공담만큼 많은 뉴욕 교민 좌절
    왜 失敗를 두려워하나
    실패해보자 또 시도해보자 더 잘 실패해보자

    
	이민진 재미소설가
    이민진 재미소설가

    어렸을 때, 떡국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는 우리 자매들에게 새해 결심을 물어보셨다. 나는 공책에다 까마득하게 높은 목표를 새해 결심으로 써놓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 연말 미국에 다녀왔다. 매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신문을 펼쳐 놓고 읽으면서, 한국 관련 기사가 정말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국이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發電)설비 수출국가로 떠올랐다는 뉴스를 읽었고, 한국 청소년들이 휴대폰 문자 경연대회(競演大會)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보았다. 남북한의 10대 청소년들이 뜻밖의 우정을 나눴다는 뉴스, 2010년에 꼭 가봐야 할 전 세계 31개 명소 중 2곳이 서울에 있다는 뉴욕 타임스 기사…. 특히 '도쿄는 잊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마지막 날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에는 가슴이 턱, 무너지는 것 같았다. 뉴욕의 한국인 이민자(移民者) 자살이 증가했다는 그 기사는 뉴욕의 택시 기사, 옷가게 주인, 경비원, 네일살롱 주인 부부의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돈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왜 하필 한국인들만 더 좌절(挫折)했을까.

    뉴욕어린이센터의 아시안 아웃리치클리닉 윤성민 부소장은 내게 중요한 관점을 제시했다. 윤 부소장은 한국인들이 인생의 성취와 경제적 성공을 중시하는 만큼이나 실패를 극단적으로 수치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윤 부소장이 "우리 한국인들은 매우 완고한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반발했다. 한국의 수천 년 역사에서 유연하고 적응력(適應力)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끊임없이 이어진 새 왕조들, 민중 봉기, 식민지 체험, 기아, 전쟁, 분단과 경제 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국인들이 겪어보지 않은 일이 어디 있던가. 한국인들은 구부러질망정 결코 꺾이지는 않았지 않은가.

    한국의 발전과 성공담은 전 세계에 물결치고 있다. 2009년 서구의 경제 매체들은 일본의 손실이 한국에는 이득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말로 하면 소니의 손실이 삼성에는 이득이라는 것이다. 식민지 피지배국이 예전의 지배국을 이겨낸 비즈니스의 아이러니를 아무도 놓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윤 부소장의 말뜻을 불현듯 알아차렸다. 한국인들은 '성공'에 대해서는 전혀 유연성(柔軟性)이 없다는 것을. 한국인들에게 성공이란 양보할 수도 없고 유보할 수도 없는 목표인 것이다.

    한국인들이 개인적으로, 또 한 국가로서 집단적으로 무너져 내렸던 경험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우리는 가족을 잃었고 재산을 잃었으며 자부심마저 잃었던 아픈 경험을 공유(共有)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이며, 성공의 증거로서 돈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들 가운데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하나. 돈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언제 우리가 항상 돈이 많았던 적이 있는가. 우리가 언제나 성공을 거둔 것만은 아닌데, 한두 번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안 주어진다는 것인가. 실패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수치(羞恥)스러운 일 아닌가.

    나는 책상에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경구(警句)를 붙여 놓았다. 베케트는 이렇게 말한다. "한번 해보라. 한번 실패해보라. 안될 게 뭔가? 다시 시도해보라. 또다시 실패해보라. 이번엔 좀 더 잘 실패해보라."(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나는 실패, 성공, 실패를 거듭하면서 베케트의 이 경구를 생각한다. 좀 더 멋지게 실패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발전(發展)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실패는 정말 고통스럽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친구들이, 그리고 우리나라가 실패를 기억하지 않거나 깨닫지 않는다면, 또 실패와 친숙해지지 않는다면 더 큰 아픔을 만날 것이다. 올해, 우리 누구나 무슨 일이든 더 잘하겠다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그리고 더 크게 성공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성공이 뭔지에 대해 더 유연하게 생각해보자. 유연하게 구부러질 수 있다면, 쉽게 부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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