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청운동 경복고 운동장. 1만5000㎡(약 4500평) 넓이의 운동장 절반 이상이 1~2m 높이의 시커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지난 4일 폭설 때 서울시내 도로에서 옮겨온 눈은 기름때가 잔뜩 섞여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포크레인이 24톤 트럭 3대에 눈을 퍼 담으려 했지만 대부분 꽁꽁 얼어있는 데다, 눈이 녹은 일부 양지에는 각종 생활 쓰레기가 섞여 나와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염화칼슘과 기름때가 섞여 운동장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위생도 우려되고 있다.

운동장에 쌓인 눈 속에 섞여있는 쓰레기

개학이 한 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서울시내 11개 학교 운동장에는 잔설 제거작업이 한창이다. 금주 들어 평균기온이 영상권에 진입했지만 눈이 잘 녹지 않아 작업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7220㎥의 눈이 쌓여있는 경복고에는 시간당 25㎥의 눈을 녹일 수 있는 가열장비까지 동원됐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설작업 중이던 트럭 운전기사 김모(45)씨는 “24톤 트럭으로 하루에 50차씩 사나흘은 실어 날라야 할 것”이라며 “양도 많고 눈이 강하게 얼어붙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반출된 눈은 자하문터널 인근 야적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햇볕이 드는 일부 구역은 눈이 녹았지만 그 안에 섞여있던 쓰레기가 다수 배출돼 운동장 한편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담배꽁초, 깡통, 페트병을 비롯한 각종 생활쓰레기들이 그대로 널려있었다. 김씨는 “폭설로 거리 청소가 이뤄질 수 없는 상태에서 반입했기 때문에 쓰레기가 많이 섞여있다”며 “쓰레기를 어느 정도 골라내면서 작업하느라 진척이 늦다”고 했다.

21일 서울 청운동 경복고 운동장. 검은 기름때 묻은 눈이 운동장 절반 이상을 덮고 있다

보충수업 차 학교를 찾은 경복고 1학년 박찬웅(17)군은 “아무리 청소를 못한 상황이라지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시민들의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동급생 백태현(17)군은 “학교가 빨리 깨끗해졌으면 좋겠다”며 “쓰레기가 계속 방치될 경우 재학생으로서 청소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학생들의 위생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경복고 학부모 이모(43)씨는 “학생들이 기름때와 염화칼슘이 잔뜩 섞인 땅에서 뛰어놀 것을 생각하니 걱정된다”며 “앞으로 학교 운동장에는 눈을 쌓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설작업이 진행 중인 경기상고의 학부모 정모(46)씨는 “눈이 다 치워진 뒤 정부에서 토질 검사를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빗물 등에 의해 자연 정화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학교 운동장 잔설 제거작업은 주말까지 계속된다. 서울시 제설대책본부 관계자는 “11개 학교에 쌓아 둔 총 2만8299㎥의 눈을 빗물펌프장이나 공터 등으로 옮길 것”이라며 “기온이 영상을 회복하면 살수차를 동원하거나 하수구에 넣어 녹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화의 그늘, 쓰레기의 어제와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