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훈아… 아니, 최 병장님

  • 성병조 대구고령자인재은행 소장
  • 이철원

    입력 : 2010.01.21 23:04

    "34년 전 같은 군인 신분으로
    저와 긴 인터뷰를 가졌던 일 기억하시나요?…
    최홍기 병장님 이제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예전처럼 팬들 앞에 다시 나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병조 대구고령자인재은행 소장
    오래전 일이어서 제대로 기억날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가수 나훈아' 대신 '최홍기 병장'이라 부름을 이해해 주세요. 벌써 34년 전 일입니다.

    군 입대 전부터 대한민국 최고 가수였던 나훈아씨와 같은 시기 군 복무를 하였고, 군인 신분으로 저와 긴 인터뷰를 가졌던 일 기억하시나요. 당시 우리는 지위와 신분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모두 푸른 제복을 입은 대한의 사나이였습니다.

    10일간의 휴가를 받아 막 여행을 떠나는 참이었습니다. 고향에서 하루를 머문 후 어머니가 싸주신 삶은 계란 보따리를 들고 여행길에 나선 것입니다. 열흘 가까운 전국 일주 여행 일정을 잡고 길을 나서니 어찌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고생스럽긴 해도 가급적 군용열차를 이용하고 주요 도시 역마다 있는 '용사의 집'에서 잠을 자면 적은 비용으로 전국을 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산서울로 가는 비둘기호 군용열차에 몸을 싣기 위해 저녁 9시쯤 동대구역 플랫폼에 이르렀지요.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가오고 있더군요. 무슨 일로 많은 장병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지,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호기심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최 병장님의 검게 그은 얼굴은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유명 가수 나훈아씨가 군복 입은 최홍기 병장으로 내 앞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보직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저는 군 복무하는 동안 부대 신문의 취재와 제작을 담당하는 보도사병이었습니다. 인솔 장교에게 다가가 거수경례를 하고 신분을 밝힌 후 최 병장과의 인터뷰를 조심스럽게 타진하였습니다.

    그날 최 병장님은 공군 문화선전대 소속으로 대구 K-2 기지에서 공연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행사를 마친 후 문선대 대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으로 돌아가던 길에 저를 만난 게지요. 공군과 육군, 병장과 상병, 유명 가수와 무명인의 간격은 일시에 무너져 버리고 우리 둘은 오랜 친구처럼 금세 가까워졌습니다. 인터뷰가 얼마나 진지하고 흥미가 있었던지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고 어머니가 싸주신 20여개 계란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먹성으로 치면 우리 둘은 양보하기 어려운 사이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지금도 왕성한 식성 유지하고 계시나요.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최 병장님은 당시 장병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라디오 프로 '위문 열차'의 사회를 맡으면서 겪은 애환도 털어놓았습니다. "말주변 없는 나를 억지로 끌어다 앉혀 고충이 여간 크지 않다"며 엄살을 떨기도 하셨지요. 군대에 들어와 몸무게가 7~8㎏ 줄었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대전 조금 지나 회덕에서 호남선 심야 열차로 갈아타야 하기에 우리의 대화는 아쉽게 끝났지만 최 병장님과의 만남은 이제 나이 먹은 지금까지도 제 일생 최고의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귀대하자마자 그날의 인터뷰 내용을 부대 신문에 크게 다루었습니다. 최 병장님이 손수 써준 '단결, 병장 최홍기, 00년 0월 0일 군용열차 속에서' 사인과 함께 실은 기사를 읽은 장병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열광 그 자체였습니다. 톱으로 내세운 제목처럼 '나훈아도 우리 편'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가수 나훈아와 함께 군문(軍門)에 있었던 국군 장병들은 모두 비슷한 전우애를 느꼈을 거라 여겨집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같은 시대를 산 젊은이로서 푸른 제복을 입고 병영에서 동고동락한 사실만으로도 남다른 긍지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요.

    2년 전 이때쯤으로 기억합니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2008년 1월 25일이네요. 최 병장님, 아니 가수 나훈아씨가 좋지 않은 소문을 해명하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 앞에 나서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기자회견 끄트머리에 최 병장님이 허리띠까지 풀려고 하면서 결백을 말씀하실 때는 옛 기억이 떠오르며 왈칵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저는 최 병장님을 믿습니다. 오래전이지만 긴 시간 최 병장님을 인터뷰한 '기자'의 직감으로 회견을 지켜보면서 최 병장님의 말씀이 진실한 것임을 느꼈습니다.

    최홍기 병장님,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여전히 아픈 마음을 갖고 계신 건 아닌지요. 이제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예전의 사랑받는 가수 나훈아로 우리 가까이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최 병장님을 화제의 안주로 더 많이 우려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34년 전 친필 사인을 받고 "나중에 이 사인을 갖고 나훈아쇼에 가면 무료입장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그때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요. 최 병장님 사인이 적힌 빛바랜 종이를 한 번 사용할 수 있도록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팬들 앞에 다시 나서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기차를 탈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어쩌다 병영수첩에 남겨진 최 병장님의 친필 사인을 볼 때마다 되살아나는 푸른 제복의 추억은 오늘도 나를 젊은 시절 어느 날의 벅찬 흥분에 휩싸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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