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비빔밥에 왜 이렇게 흥분을… 한국은 '오징어' 같은 나라"

    입력 : 2010.01.16 03:22 | 수정 : 2010.01.16 13:36

    곽수근이 만난 구로다 "한식 세계화의 대표는 '한정식'"
    "선택 즐거움과 아름다움 있어… 음식 관점에서 접근해야 성공"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69)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국장의 비빔밥 칼럼은 지난달 26일 보도됐다. 그는 MBC '무한도전'팀이 한식을 세계화하겠다며 미국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비빔밥 광고를 보고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구로다는 칼럼에 "뉴욕타임스 광고사진을 보고 비빔밥을 먹으러 나온 미국인이 이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놀라지 않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썼다.

    글이 문제가 되자 그는 9일 같은 신문에 '양두구육이 일본에선 한국처럼 쓰이지 않는다'고 해명성 글을 썼다. 12일 그를 만났다.

    ―양두구육의 한·일 간 뉘앙스가 진짜 다른가요.

    "일본에선 장난스럽게 쓰는 말입니다. 음식 견본과 실제가 다를 때 웃으며 '양두구육이네'라고 말하지요. 맞선 때 실물이 사진만 못해도 '양두구육'이라 합니다. 사기(詐欺)를 뜻하는 한국에서의 뜻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독도, 일본군 위안부에 이어 비빔밥 문제까지 꺼낸 건 관심을 끌어보려는 건가요.

    "20년 넘도록 쓴 한국 관련 기사가 셀 수 없을 정돕니다. 대부분은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겁니다. 그런데 늘 부정적인 글만 부각되더군요."

    ―비빔밥 파동이 억울합니까.

    "일본에선 20여년 전에 최초의 한류 붐이 일었습니다. 그때 저도 한몫했다고 자부합니다. 1986년 NHK에서 한국어 방송도 했고 한국의 음식·여행·말에 관한 책을 내고 강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알린 저를 이토록 몰아붙이니 억울하지 않겠어요?."

    ―한·일문제에 관한 민감한 발언들은 소신 아닌가요?

    "기자로서의 의견을 말한 것뿐입니다."

    ―비빔밥은?

    "독도처럼 한·일외교에 관한 발언을 할 땐 대충 반응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비빔밥에 대한 반응은 뜻밖이었어요. 비빔밥이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큰 의미가 있었나요?"

    ―비빔밥을 싫어합니까?

    "칼럼 첫 부분도 '비빔밥은 일본인에게도 인기 있다'로 시작합니다. 오늘 낮에도 '간장두부 비빔밥'을 먹었어요. 비빔밥을 논한 것은 한식 세계화의 대표선수로 적당한 것이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 폄하는 아니었어요.(그가 작년에 한글로 쓴 책 '보글보글 한일음식 이야기'에는 '그동안 내가 미워했던 비빔밥의 재발견이었다'라는 부분이 있다. 비빔밤에 대해 평소 감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한식 세계화에 비빔밥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전 90% 이상 밥을 사먹습니다. 한정식이 한식 세계화의 대표가 돼야 한다고 봐요. 삼계탕이나 쌈이 비빔밥보다는 낫지요."

    ―한정식의 어떤 점이?

    "우선 가짓수가 많잖아요. 외국에선 볼 수 없는 음식문화입니다. 보기도 좋고 선택의 즐거움도 있지요. 시각적인 면으로도 아름다워 외국인들이 놀랍니다."

    지난달 26일 산케이신문에 구로다 가쓰히로씨가 비빔밥에 대해 쓴 칼럼. / 채승우 기자

    ―평소 자주 먹는 음식은?

    "한겨울엔 굴전·생굴·굴밥 등 굴 음식을 즐깁니다. 일본에선 볼 수 없는 굴전의 맛은 최고지요. 점심식사로 5000원짜리 한식 도시락을 애용합니다. 요일마다 자반고등어· 제육·닭볶음 등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한국이 싫으면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을 일본에 두고 혼자 한국에서 30년 이상 산 이유가 오로지 한국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을 알기 위해 가족을 포기했어요. 하루 24시간 중에 1시간만 일본을 위해 살고 23시간은 한국을 위해 살아왔어요. 그런데 떠나라니…."

    ―그렇다면 한국을 위해 일해볼 생각은 없나요?

    "한국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한국인과 결혼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인맥을 알고 그 네트워크에 속할 수 있거든요.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나 방송인 로버트 할리처럼."

    ―비빔밥 논란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일본인들이 한국을 비판하는 건 무조건 듣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좌파에 가까운 이들이 주로 그러는 것 같아요. 방송국의 일부 편향된 인사나 친노(親盧) 사람들…."

    ―앞으로도 한국에 계속 살 건가요.

    "계속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비빔밥처럼 한국인들이 한식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면 한식 발전의 동인(動因)이 될 겁니다. 비빔밥 외에도 다른 한식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한식 세계화에 대해선?

    "이외수 작가가 야만적인 날고기라 평한 회와 스시도 서양에선 처음에 비호감이었습니다. 먹어본 사람들이 늘면서 맛을 알게 됐고 세계화됐지요. 한식도 그 안에 담긴 혼이나 정신을 앞세우기보다는 음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얼마나 보기 좋고 맛있느냐로. 몸에 좋은 웰빙음식이라든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등으로 자연스럽게 알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치와 기무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음식의 기원에 대해 너무 민감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일본의 3대 요리인 초밥·뎀뿌라(튀김)·스키야키(일본 전골) 중 뎀뿌라와 스키야키는 뒤늦게 외국에서 들여온 것을 일본식으로 변용한 겁니다. 중국의 소면을 라멘으로 개발한 것도 그렇고요. 기무치가 대세가 되면 결과적으로 김치도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요."

    ―기무치야말로 양두구육이잖아요.

    "음식의 뿌리가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비빔밥 논쟁이 가열된 탓인지 그를 만나는 데는 '약속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본 구로다의 서가(書架)에는 그가 쓴 책들이 꽂혀 있었다. 언뜻 세어봐도 30권은 돼 보였다.

    1983년에 낸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를 비롯한 구로다의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다. 교도(共同)통신 기자였던 그에게 산케이신문이 "한국에서 평생 근무하게 해주겠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1964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구로다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71년이다. 1978~79년 연세대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은 그는 1980년부터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1989년에 산케이신문으로 옮긴 것도 서울에 계속 있고 싶어서였다.

    1968년에 결혼한 아내와 작은딸(34)은 도쿄에 산다. 큰딸(41)은 대만인과 결혼해 남미에 있다. 그는 한국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삿거리도 많고 재미있는 지역입니다. '오징어' 같다는 느낌입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상대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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