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한 소녀, 세 사내, 돈, 그리고… '야로마을의 비밀'

    입력 : 2010.01.16 03:24 | 수정 : 2010.01.16 09:36

    경남 합천 지적장애 여고생 성추행 사건의 진실은…
    아빠는 하늘나라로엄마는 도시로 가고병든 할머니와 사는열여섯 소녀를…

    경남 합천경찰서는 같은 마을에 사는 지적장애 여고생(16)을 성추행한 혐의로 합천군 야로면의 72살 A씨 등 주민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YTN 1월 6일 보도

    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합천군 야로면(冶爐面)은 인구가 3000명가량인 시골 마을이다. 이번 사건에 남자 수십명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아 마을 전체가 들끓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소녀의 집은 지독하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재작년 세상을 떠났다. 공사 현장과 날품팔이 생활을 전전했던 그는 잦은 병치레를 하다 가족에게 밭 한 뙈기 남기지 않고 숨을 거뒀다.

    소녀의 어머니는 곁에 없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1년 뒤 소녀와 중학생인 남동생을 남겨두고 도시로 떠났다. 소녀의 할머니는 "애 엄마가 술을 자주 마시고 애들을 돌보지 않았어. 남편 죽은 지 얼마 됐다고 다른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소녀는 할머니가 돌봤다. 할머니는 양로원 주방에서 일하며 월 20만원, 종이와 빈병을 주워 팔아 월 15만원을 벌었다. 정부가 빈곤 가정에 주는 보조금 64만원은 어머니가 받고 있고, 할머니·손자·손녀는 이 35만원으로 살고 있다.

    10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할머니는 허리가 반쯤 굽어 있었고 걷는 것도 힘겨워했다. 할머니는 주로 양로원에 딸린 방에서 잤으며, 소녀는 양로원이 있는 면소재지에서 400~500m 정도 떨어진 외곽에서 남동생과 살았다.

    소녀의 집 외관은 깨끗했다. 하지만 이 집은 7년 전 새로 지을 때의 융자 2000만원과 빚 1600만원을 못 갚아 경매에 넘어갈 처지라고 한다. 밀린 공과금에 전기가 자주 끊겨 남매는 밤에 촛불을 켜기도 했다.

    소녀는 '정신지체' '지적장애'라는 보도와 달리 정상아였다. 소녀의 고교 친구는 "정신이 이상하거나 저능아가 절대 아니다"고 했고, 한 경찰관도 "(소녀는) 정상인데 왜 지적장애아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소녀의 얼굴은 예뻤다고 했다. 그런 소녀에게 남자들이 손길을 뻗친 건 소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2008년부터다. 현재까지 경찰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남자들은 이웃집 70대 노인, 인근 마을의 30대 남성, 택시기사 등이다.

    이들은 소녀를 집에서 혹은 집 밖으로 불러내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 소녀의 어머니마저 마을을 떠난 뒤부터는 소녀를 찾아오는 남자들의 발길이 훨씬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는 경찰에서 "남자들이 몸을 만질 때마다 2000원, 3000원, 5000원을 줬다"고 말했다. 용의자들은 소녀에게 돈을 준 건 인정하면서도 추행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소녀 형편이 어려워 밥이나 우유 사먹으라고 순수한 마음에서 줬다는 주장이다.

    이번 일이 터진 뒤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소녀 또래의 딸을 둔 마을 아주머니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소녀 친구의 어머니는 "딸 같은 자식을, 이게 말이 되느냐. 보살피지 못할망정 어떻게 어른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도 "만만한 집 애라고…. 에라이, 이 천벌 받을 새끼들"이라고 했다.

    마을 남자들 입장은 갈렸다. 50대 남자는 "우리 마을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냐. 모두 찾아내 따끔하게 혼내줘야 한다"고 했고, 한 노인도 "딸 같고 손녀 같은 애를… 에고, 에고"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40대 남자는 "당사자들이 추행을 안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끝까지 수사를 지켜봐야지요. 애가 먼저 남자를 불렀다는 말도 있고…"라며 말 끝을 흐렸다.

    이런 가운데 마을엔 이상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소녀가 접근해온 남자들 이름과 그들이 준 돈을 적어놓은 다이어리(일기장)가 있다, 리스트에 나오는 남자가 60명이 넘는다는 말이 돈 것이다. 한 남성은 "여기 남자들이 몇명 된다고 60명입니까.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했다.

    반면 한 여성은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누가 지어냈겠느냐. 추행이 아니라 더한 짓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소녀를 추행한 남자들이 적어도 수사 대상인 3명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했다.

    소녀가 지적장애아라는 얘기도 소문의 한 가지였다. 40대 여성은 "소녀가 경찰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남자들이 지어낸 말일 수 있다"고 했다.

    마을 여자들은 "경찰 수사가 소극적"이라고 했다.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고향 사람들이라고 봐준다" "소녀 집이 힘이 있다면 이렇게 수사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조사를 받은 3명이 전원 불구속 입건되자 수사 불신 분위기가 마을에 더욱 확산됐다. 일부 주민들은 "그냥 덮으려 한다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합천서는 "증거에 따라 수사할 뿐"이라고 하면서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경찰은 소녀를 추행한 남자들이 더 있다는 의혹에 대해선 "소녀의 진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온 것은 3명이 전부"라고 했다.

    '남자들 이름이 적혀 있다'는 다이어리에 대해서도 "수사팀이 확보한 자료에 일기장이나 다이어리는 없다. 지금으로선 소문일 뿐이다. 그렇다고 피해자(소녀) 집을 압수수색할 수도 없고…"라고 했다.

    경찰은 앞서 70대와 30대 남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영장을 기각시켰다. 30대는 예전에 길 가던 소녀를 성폭행한 전과가 있다.

    경찰은 지난 11일 사건을 마무리하고 검찰로 넘기려던 일정을 바꿔 수사기간을 연장했다. 주민과 여성 단체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단체 회원들은 7일에 이어 12일에도 면사무소를 찾았다. 이들은 여성 폭력을 방치해선 안 되고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청소년상담센터 관계자는 "소녀는 큰 충격과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소녀는 지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다.

    "지난여름쯤인가. 집이 캄캄해 옥상에 올라가니 손녀가 어른이랑 있더랬어. 집에 가라고 막 야단쳤지. 그때 지서(경찰서)에 신고만 했어도…." 할머니가 울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