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15년째 야쿠르트 넣어준 ‘야쿠르트 아줌마’

    입력 : 2010.01.14 13:56 | 수정 : 2010.01.14 16:28


    “불 좀 땠어? 밥은?”

    12일 낮 12시.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반지하방. ‘야쿠르트 아줌마’ 김성임(55)씨가 혼자 사는 이선임(88)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가스가 나갔는지 보일러가 잘 안돼”라는 말에 김씨는 보일러 스위치를 살핀다. 어지럽게 널린 방 한가운데에는 휴대용 가스렌지와 냄비가 놓여 있다. 야쿠르트 배달을 핑계 삼아 김씨가 이할머니를 살핀지도 벌써 수년째다. 이 할머니는 “내가 뭘 아나. 그냥 넣어주는 대로 먹는거지”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입구에 전동스쿠터가 놓인 근처의 다른 반지하방. 야쿠르트를 든 김씨가 철문을 두드리자 하반신이 마비된 김대원(75)씨가 안에서 “어서오세요”라며 반갑게 맞는다. 안으로 들어선 김씨는 “김치는 남았나?”라며 냉장고 안을 살핀다. 나오면서 “추우니까 밖에 나오지 마시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김씨를 찾는 동생 김순자(69)씨는 “오빠가 낮에 주무시더라도 잘 계신가 일부러 꼭 불러보신다더라”며 “아주머니 덕에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요새 저런 사람 없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김씨가 하루에 야쿠르트를 비롯한 유제품을 배달해주는 가구수는 150여곳. 그 중 이 할머니와 같은 독거노인 가구가 6곳, 저소득층 가구가 6곳이다. 독거노인들한테는 회사나 동사무소에서 야쿠르트비가 나오지만 저소득층 가구에는 김씨가 남몰래 사비를 털어 야쿠르트를 넣어주고 있다. 96년부터 시작해 햇수로만 벌써 15년째다.

    김씨가 자비로 넣어주는 유제품은 한집당 1만원이 조금 넘는 꼴. 모두 합해 10만원이 채 안되지만 넉넉하지 않은 김씨 형편을 고려하면 적다고만은 할 수 없는 금액이다. “큰 건 아니더라도 드시고 싶어도 돈 주고 못 사먹는 분들이시니까…”라며 김씨가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지난 2007년에는 폐휴지를 모아 남몰래 어려우신 분들을 갖다준게 알려져 동사무소 감사장을 받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냐는 물음에 김씨는 “그런게 어디 있겠냐”며 “다 도우면서 사는거지. 이게 뭐 봉사야”라며 웃었다. “간혹 빨리 죽었으면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혼자 사시면 외롭기도 하시고 그러니까…”라며 우유 봉투에 야쿠르트를 넣어주었다. “여기 할머니도 오줌보를 차고 있어 밖으로 못 나오신다. 저쪽 집에는 시각장애인 부부가 살고….”

    ◆자기도 넉넉하지 않은데…

    경북 구미 종가집에서 태어난 김씨는 초등학교 5학년때 서울로 이사와 29살에 지금의 남편과 중매 결혼했다. 야쿠르트 배달은 생활에 보탬이 되겠다 싶어 93년부터 시작했다.

    계절마다 다르지만 김씨가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해 버는 돈은 한달에 130~150만원 남짓. 하루종일 손수레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150원짜리 야쿠르트부터 2400원짜리 우유까지 팔아 버는 돈이다. 배달하다 잠깐 짬을 내 은행에 입금한 45만원이 일주일 넘게 번 돈의 전부다. 택시를 모는 남편의 수입을 합쳐도 두 딸의 대학 등록금을 대기도 모자랐다.

    지난 해 11월 작은딸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20년 넘게 56㎡(17평)짜리 빌라에서 두 딸과 김씨 부부가 함께 살았다. 그나마도 전세였다.

    근처에서 구둣방을 하는 송영태(68)씨는 “40년 넘게 서울 생활하면서 그 흔한 아파트 하나 장만하지 못했냐고 자주 놀린다”며, 아주머니 형편이 괜찮냐는 질문에는 “형편이 괜찮으면 이 추위에 나와서 저러겠느냐”고 되물었다. “길바닥에 담배꽁초 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지나치지 못하고 줍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통장엔 잔고 없어요. 어제 다른 아주머니 물건값 넣어줘서….” 김씨는 엊그제 한달 월급이 훨씬 넘는 220만원을 동료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 빌려줬다. 얼마 되지도 않는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서였다.

    ◆'응암동 천사표' 야쿠르트 아줌마

    이런 김씨의 성격 때문인지 배달하는 내내 동네 주민들의 인사는 끊이질 않는다. 12일에는 배달하며 쇠머리찰떡 한덩이와 귤 한봉지를 받았다. 김씨는 “원래 배달하면서 이집 가서 먹고 저집가서 먹고 그래요”라며 점심을 먹은 부대찌개 식당에 들려 종업원들에게 방금 받은 귤 한봉지를 건넸다. 종업원들이 거절하자 “방금 먹었어, 먹어”라며 귤봉지를 떠넘긴다.

    고객의 우유대금을 3년 가까이 받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방암 판정을 받은 연용숙(48)씨에게 우유를 배달해주면서 병이 완치된 지금까지 수금을 미뤄왔다. 연씨는 골다공증 우려가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김씨에게 우유배달을 신청했다. 2007년 5월경부터 배달한 우유값만도 벌써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연씨는 “아주머니가 말해주지 않아 1100원이던 우유값이 오른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며 “돈 안 내고 이사 가면 어떻게 하실려구요’라고 해도 영수증은 커녕 씩 웃으시기만 하시더라”고 말했다.

    기자촌이 헐려 4년전 이사온 이영숙(84)씨는 “딸 같기도 하고…. 항상 웃는 얼굴”이라며 “야쿠르트 배달하면서 간간히 설거지도 해주고 한 모양이더라. 바쁜데 그렇게 남 돕는게 쉬운게 아닌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도 몰라

    이런 김씨의 선행은 주위 사람들은 물론 가족까지도 몰랐다.

    “전혀 몰랐죠.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허허허.” 취재로 김씨의 선행을 알게 된 남편이 너털 웃음을 졌다. 그는 “우리도 어려운 입장에서 그래도 어려운 분들 도와줬다니 기쁩니다. 남편으로서 집사람을 고생시켰다”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의 선행을 몰랐기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권순남(43)씨는 “원래 적극적으로 남을 도와주시는 성격”이라면서도 “같이 일하는 우리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좋은 마음으로 하는거지, 알려지면 안 하는 것만 못해. 나보다 더 좋은 일 하는 사람도 많아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그래도 내가 힘 닿는데까지 도와드려야지”라며 수줍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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